김용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장

포항 지진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되고 있다. 예기치 못하게 다가 온 재난이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며 상처가 빨리 치유되기를 바라고 있다. 

포항은 필자에게 있어서 낯선 경상도의 어느 땅이 아니다. 2002년 서귀포시연합청년회장으로 일할 당시 포항시청년연합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간직한 친구들이 많은 곳이다. 그러기에 지진 발생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놀란 마음으로 포항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상도 사내 특유의 활달함을 자랑하던 친구의 목소리는 낮은 떨림으로 들려왔다. "이런 아수라도 따로 없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정신이 나갔어. 그런데 어떻게 하냐. 내일이 우리 딸 수능일인데 시험을 제대로 치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재난은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날 아침에만 해도 정상적이었던 일상이 몇 시간 만에 무너진 것이다.

많은 담론이 오고 갔지만 안전이 우선 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 아래 수능이 연기된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들으며 필자는 안도감을 느꼈다. 필자 역시 두 딸이 수능을 치루며 수험생들이 수능을 위해 졸린 눈 참아가며 책장을 넘기며 어서 수능이 마침표를 찍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잘 안다. 그러나 여진의 공포 속에서 시험을 치룰 포항의 수험생들을 생각하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이해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포항 지진 사태를 두고 많은 말과 글이 오고 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아픔을 함께 나누며  희망을 전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담긴 글을 읽으며 세상의 온기를 느낀다. 그러나 간혹 냉소와 조롱의 흉터로 다가오는 글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건물이 무너진 것은 복구될 수 있지만 정신이 상처 입은 것은 치유되지 않은  흉터로 남는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치유되느냐가 그 나라 문화의 척도라고 한다. 괴담을 만들고 갈등을 조장하는 글과 말들은 재난보다 더 무서운 공포가 될 수 있다. 재난에 대비하는 안전 교육도 중요하지만 재난을 극복하는 합심된 마음이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마음의 향기인 것이다.

이번 포항 지진을 보며 다시금 안전대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이 다른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교사들의 지시 아래 체계적으로 피난이 이뤄진 반면, 다른 학교는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학생들을 교사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며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인식의 차이였던 것이다. 재난은 자연이 내리는 것이지만 그 대비책은 사람의 몫이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제주도도 이제 철저하고 세심한 재난대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재난대비를 위한 기본 매뉴얼과 행동지침은 정해져 있지만 도민들에게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재난은 피해갈 수 없다지만 거기에 철저히 대비했을 때 피해의 폭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매운바람이 서늘하게 다가오는 11월이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들을 수확하기 위해 도내 농가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분주하게 움직일 시간이다. 가을의 마지막 자취와 겨울의 첫 흔적을  남기며 11월은 가고 있다. 눈꽃이 피어나면 포항의 일들은 잠시 스쳐간 일들로 기억에서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포항은 우리에게 말해줬다. 재난대비의 중요성을 포항은 가르쳐 준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주는 것이 안전임을 알려 줬다. 11월, 나는 지금 포항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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