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불러도 다시 더 부르고 싶은 선생님! 선생님은 까만 밤바다에서 헤매는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인생의 등대십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 하나, 말씀 한 마디마디가 아직도 저희에겐 많이 필요한데…"

 떠나는 인사를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는 명욱이의 목소리가 식장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졸업생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명욱이의 목소리를 따라 추억을 더듬는 듯 콧물 훔치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작년 3월 2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 날뛰는 이 얘들을 어떻게 무엇부터 지도해야할지 난감해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식장의 숙연한 분위기도 연출할 줄 아는 착하고 순한 어린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보내야 할 시각인 것이다.

 애들보다 먼저 웃고 애들보다 먼저 울며 지낸 1년 간의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간다.

 "나를 나답게 아름답게 가꾸자." 첫날부터 반의 생활 목표를 정해놓고는 6학년으로써의 각오와 행동을 발표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도록 했다. 그리고 매일 일기 쓰기와 예습을 과제로 주고 꼬박꼬박 검사했더니 얘들 사이에선 호랑이 선생, 엉망진창, 연설꾼 등으로 험담이 심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하듯이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교사의 본분에만 충실하기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

 “하느님은 쓸모 없는 인간을 창조하지 않는다. 너희는 특별한 사람이다” 성서까지 들먹여가며 교실 안팎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시켰다. 그리고 토론회 개최, 골든벨을 울려라 등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획해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했더니, 애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민을 일기장에 털어놓거나 메일로 알려오면서 봄빛은 우리들 마음 속에서 여름으로 또 가을로 영글어 갔다. 악명 높은 선생님으로 뿌린 씨앗이 보석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열매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명욱이의 목소리도 떨고 있었다. 아직은 가르쳐야 할 것이 많은데, 아직은 보내고 싶지 않은데, 또 아이들보다 먼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여느 때처럼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하고는 마지막으로 한사람씩 작별의 악수를 나누려고 할 때 회장인 효진이가 "선생님, 잠깐만요" 하며 내 앞에 나와서는 것이었다. 그리곤 색종이로 꾸민 예쁜 상장과 함께 38송이의 장미꽃 다발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1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38개의 별들을 더욱 반짝이게,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으므로 이 상을 드립니다. 2002년 2월 16일 신제주초등학교 미리내 일동 ★☆★”

 "세상에!" 이렇게 멋진 상을 어린 제자들에게서 받다니, 교직을 택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런 감동 때문에 교육 붕괴니, 스승의 부재니 행간에 말들이 많지만, 선생님들이 교단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리라.

 "얘들아,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안녕."<진창진·신제주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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