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그래서 주위에서 100살이 넘은 어르신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고령화 사회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치매와 뇌졸중 같은 뇌질환은 환자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많은 고통과 부담을 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 교수로 있는 친한 선배 의사는 자신은 물론 여동생도 의사지만 고향 창원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는 속수무책이라고 했다. 자식들이 멀리떨어져 서울에 살고 있고 다들 생업이 바빠서 직접 모시지는 못 한다.

그 선배는 워낙 효자라서 주말이면 병원에 일찍 나와서 환자회진을 돌고는 KTX를 타고 고향 창원으로 내려간다. 처음에는 매주 내려가더니 요즘은 격주로 가는 모양이다. 

제주도에 있다는 핑계로 고향 창원에 혼자 사시는 아버지를 일 년에 몇 번 찾아뵙지 못하는 필자는 그 선배를 보면서 늘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버지도 치매 전 단계쯤인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계시다. 명색이 의사지만 약을 잘 드시라고 말씀드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며칠 전 그 선배가 술자리에서 아무리 자식들이 다 의사라도 치매를 앓는 부모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혼자서 수발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얼마 전에 가기 싫어하시는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더니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장모님도 지금 요양병원에 입원해계신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서귀포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베이비부머가 본격적으로 노인인구에 편입되는 몇 년 뒤는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다. 제주도 또한 마찬가지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치매 유병률은 전국평균 9.8%보다 높은 11.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아서 치매환자수가 1만명을 넘었다. 

농촌지역 비중이 큰 산남지역은 단순히 인구만 보면 17만5000여명으로 49만명인 제주시인구의 3분의 1 정도지만 노인인구의 비중은 그 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측한다.

현재 제주시 지역에는 제주의료원 부속 요양병원을 비롯해서 10여개의 크고 작은 요양병원이 있는 상항이다.

그러나 산남지역에는 요양병원이 하나 있는데 그마저도 호스피스 병원 개념이 커서 요양병원이 전무하다고도 할 수 있다. 

서귀포 지역에 거주하는 수천 명의 치매환자들도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제주도는 양질의 치료시설을 제공해서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드려야 한다. 이제 답을 할 차례다. 지금 서귀포에 꼭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요양병원이다. 서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립 요양병원보다는 제대로 된 공립 요양병원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