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일 제주문인협회 감사

몇 년 전 어느 날 들고양이가 만장굴 뜨락에 둥지를 틀었다. 야생에서 살아서 그런지 가녀린 몸매에 웅크린 모습이 축은하고 애잔했다.

그런 고양이를 만장굴 여성 해설사 한 분이 극진한 정성과 사랑으로 친자식처럼 돌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해설사 수고비를 받으면서 고양이 먹이를 동물병원에서 사서 먹이는데 만만치 않은 금액이 소요됐을을 것이다. 보다 못한 만장굴 관리소장이 다소 적은 금액이지만 자비를 들여 한두 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봄이 되자 털갈이를 하고 그 정성에 보답하듯 아가씨 몸매처럼 윤기가 흐르고,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줬다. 또한 만장굴을 찾아오는 관광객 앞에서 재롱을 떠는 모습은 한폭의 그림 같았다. 그런 사랑 속에서 입하에 다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여성 해설사는 산모를 돌보랴 새끼를 돌보랴 관광객을 상대로 해설하랴 일인삼역을 담당했다.

그게 그림 같이 만장굴에 벌어지는 일상이었던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생동감 넘치는 삶은 조선 후기 김홍도 그림이 떠올랐다. 한국적 풍속화 '황묘농접'에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는 그림이 매혹적이다. 또한 김득신의 '파적도' 역시 고양이가 병아리 때문에 어미 닭의 긴박한 정황을 묘사한 그림은 농경사회의 애잔한 생활상을 표현하고 있다. 꿈 풀이에서도 곤경에 처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재운이 좋다는 길몽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이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삶은 자연과 같이 도덕적 삶이기 때문이다. 곧 사람은 인격이다. 그 행위는 이성과 양심 그리고 자유에 따른 책임과 정의가 뒤따르는 사랑이다. 고사에 꽃을 좋아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해치는 일이 없다 했다.

갓난아이와 같이 아름다운 동물을 사랑하는 여성 해설사, 만장굴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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