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편집국장

한국사회가 국정원의 불법사찰 로 떠들썩하다. 지난 6일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로 이뤄진 국정원의 교육감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전국의 자치단체장 11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이뤄진 국가정보원의 불법 사찰 혐의를 수사해 달라며 이 전 대통령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 전 수석은 자신을 내사하는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에 이어 박민관 1차관 등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간부들, 이광구 우리은행장, 김진선 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불법사찰한 혐의(직권남용)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근헤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은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파트'를 만들어 영화계 전반을 사찰했다. 영화계뿐 아니라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만들어지는 등 불법적인 '정치공작'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전국이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로 떠들썩한 가운데 제주에서도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정부의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 파문이 주로 청와대와 국정원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면 제주지역은 한 때 '왕실장'이라고 불렸던 원희룡 도지사의 전 비서실장인 현광식씨에 의해 이뤄졌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현광식 전 비서실장과 관련해  '제3자 뇌물수수'과 '공무원 블랙-화이트리스트 작성 지시', '제민일보 회장과 간부들 사찰 지시'를 잇따라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당사자인 조창윤씨는 11일 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씨는 현 전 실장이 제민일보 비리 관련 정보를 수집·취합해 청와대, 검찰, 감사원에 투서해 수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씨는 "현 전 실장이 이 작업을 완료하면 1년 밥값 다 하는 거다.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 이번 미션은 저하고 형님하고 무덤까지 가져갈 일이다고 강조했다"고도 밝혔다.

조씨는 지난 2015년 1월과 8월 제주도 정기인사를 앞두고 '실·국장 인사 명단'과 '우수 사무관 인사 명단' 등 화이트리스트를 작성해 현 전 실장에게 전달했고, 1월 인사에서는 그대로 반영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서귀포 17개 읍·면·동장을  평가한 자료와 4·5급 공무원과 운전직 명단 등이 포함된 블랙리스트를 2차례 전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떤 이들은 도지사 비서실장이 정보 수집 차원에서 공무원 평가와 관련한 자료를 작성한 게 그렇게 큰 문제냐고 제기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공식조직이 아닌 '사적 정보원'을 활용해 인사자료로 활용했다면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도정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언론사의 비리를 수집하라고 요청했다면 이는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이다. 더욱이 언론사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검찰 등에 투서토록 요구했다면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인 명제다. 공익 목적을 위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 행위에 대해 그 누구의 간섭과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11일 기자회견을 연 조씨는 현 전 실장의 제민일보에 대한 비리 수집 지시 사실을 원희룡 도지사에게도 이메일을 통해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원 지사는 요지부동이다. 현 전 실장도 직접 나서기보다 언론사 인터뷰 등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원 지사는 현 전 실장 의혹은 물론 지사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사과해야 한다. 의혹에 대한 진상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불법사찰이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활용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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