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

한때 소련과 동독이 올림픽 메달 경쟁에서 1, 2위를 다툰 것을 기억하는가? 당시 소련이야 거대한 연방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반쪽짜리 국가로서 흡수통일 대상이 되었던 동독의 메달 질주는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감탄을 자아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뭔가 조금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러한 기현상의 배경에는 엘리트스포츠의 메달 집착증이 있다.

나라에 따라서는 올림픽 메달을 따기만 하면 월계관의 영광에 평생 연금 혜택, 스포츠 전문가로서의 직업 보장 등 피땀 쏟은 훈련에 대한 보상이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이들의 빛에 가려져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메달 선수들의 인생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 중에는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을 포기하고 스포츠에 인생의 전부를 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외국 원정에 나가는 대학생 선수들 일부는 출입국 서류조차 스스로 작성하지 못하는 촌극이 빚어진다. 선수들의 대학 진학에 요구되는 수능 점수 커트라인이 과도히 낮다는 점은 선수들에게 정상적 교육이 소홀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육성된 스포츠 선수들이 큰 대회 메달 없이 은퇴하게 되었을 때 이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들이 스포츠를 그만두더라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스포츠와 학업의 병행이 마땅하다. 미국 대학 선수들의 경우 상황이 사뭇 다르다. 일정 학점을 유지하지 못하면 당장 운동을 그만둬야 하는 엄격한 학사규정이 있다. 그래서 미국 대학 선수들이 원정 경기를 다닐 때는 선수들을 위한 학업 도우미가 따라붙는다. 이제 우리 대학에도 선수들에 대한 엄격한 학사관리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엘리트스포츠 위주의 메달 집착증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즐기는 올림픽이 되려면 생활스포츠의 활성화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 과거에 메달 수가 경제발전도와 나란히 오름세를 타며 화려한 성적을 거두다가 선진국 대열에 완전히 진입한 뒤에 파이팅 정신이 가라앉고 메달 경쟁에서 주춤했다. 그러나 생활스포츠가 대중화되고 주민이 대거 참여하는 스포츠클럽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선수층이 두터워졌고 마을 클럽에서 배출한 선수가 국가대표로 뽑혔다. 이에 따라 국제대회에서 획득하는 메달 수도 덩달아 회복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의 통합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나 여전히 올림픽 출전 선수는 대부분 엘리트스포츠 출신이다. 일부 인기 종목을 제외하면 선수층이 얇아 국가대표 선수 발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일명 '우생순')"으로 유명해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우리나라와 맞붙은 덴마크는 인구 560만명 중에서 핸드볼 클럽에 가입해 있는 선수가 12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인구 5천만명인 우리나라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생활스포츠의 활성화는 진정한 복지사회로 가는 길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필자가 덴마크에서 생활할 때 경험한 바로는 오후 3시면 벌써 퇴근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스포츠를 즐긴다. 수요 증가에 따라 스포츠 시설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클럽 회비도 누구나 낼 수 있을 만큼 싸다. 말로만 일과 가정의 균형이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와 제도를 정부가 나서서 마련해주니 가능한 일이다. 또한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 중 의료비가 큰 몫을 차지하는데 이를 스포츠를 통한 건강 유지로 줄이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 벤치마킹할 만하다.

두 달 후면 평창 동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연이어 개최된다. 이제는 메달 수 종합 순위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진짜 즐기는 스포츠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메달 하나 추가에 목매는 것보다 어려움을 극복해낸 선수들의 인간승리 스토리를 함께 나누며 기뻐하고, 국민 모두가 직접 땀을 흘리며 즐기는 스포츠로 탈바꿈해야 한다. 올림픽 메달 집착증에서 벗어나야 진정 스포츠가 산다.

필자가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 '스포츠 메카 제주'라는 구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제주도는 동계 스포츠 전지훈련 기지로서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미국프로골프대회(PGA)를 유치하는 등 국제스포츠계에서 위상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장점만으로는 메카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각종 스포츠 대회를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인들의 활동 기반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해낼 수 있는 프로 선수 육성 및 활동 공간이 있어야 할 것이며, 제주 체육인들이 국내외 체육인들과 대회를 통해 실력을 견주고 이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전지훈련 및 대회 유치 공간으로서의 방문 가치로 접근하기보다는 모든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스포츠 생태계 구축에 신경쓰는 것이 메달 집착증을 벗어난 접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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