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 <구세주>가 최근 한 미술품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5천억 원이란 가격으로 낙찰되어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뉴스다. 구매자는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 정부로 확인되었으며 아부다비 루브르(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분관)에 진열될 예정이란다. 

근래에 들어 미술 경매에서 기록을 세운 미술작품으로는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가격은 다 빈치에게 미치지 못한다. 천정부지란 말이 있는데 상한가가 없다는 뜻이다. 최근 미술작품경매가 이를 실감시키고 있다. 이를 계기로 다 빈치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 빈치는 르네상스(15, 16세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그림은 30점 안팎에 머문다. 워낙 다재다능하여 그림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는데 첫 번째 요인이 있다 할 것이다. 그는 회화, 조각, 건축의 미술 분야 뿐 아니라 해부학, 식물학, 토목공학 등 다방면에 걸친 만능인이었다. 인간 능력의 극한에까지 밀고 간 것이 아닌가고 말해지기도 한다. 적어도 4, 5백년 뒤에나 가능한 일을 이미 시도했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비행기의 원리를 발명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다 빈치의 회화작품이 예상외로 적다는 것은 이처럼 전공 영역이 많다는 데도 요인이 있을 테지만 이보다 더 큰 요인이라면 그가 완벽주의자였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보통 3, 4년은 걸렸으니까 그 완벽의 강박성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다 빈치는 미완성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같이 보인다고 말해지기도 하는데이야말로 과학적 탐구의 본질이지 않은가 하는 연구자도 있다. 과학적 탐구란 본질적으로 완성에서보다 미완성, 미완결에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자연히 과작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작품 주문자(당시는 주문제작이 주를 이루었다)와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그가 여러 차례 소송사건에 연루되었던 사례가 있는 데 이 역시 제 날짜에 주문을 완성하지 못함에서였다.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도 제작기간이 3년이나 걸렸지만 끝내 미완으로 남겨 주문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자신의 소유로 갖고 있었다. 이 작품이 그의 조국인 이탈리아에 남아 있지 않고 프랑스에 남게 된 이유도 그의 만년을 프랑스 왕의 특별 손님으로 앙브와즈 성을 기증받아 여기서 최후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가 지니고 있던 유작을 왕이 사들이면서 루브르에 소장하게 된 것이다. 프랑수아 1세는 다 빈치를 극진하게 모셨다.

미술작품 가운데 <모나리자>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도 없을 것이다. 이 작품만큼 많은 글이 쓰인 작품도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가 많은 연구를 촉매한 것이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 알려져 진위시비가 있는 <구세주>에 비하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인지도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것의 미술사적 가치와 작품을 에워싼 아우라는 비교할 작품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관마다 그 미술관이 지닌 대표적인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루브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 <미로의 비너스><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 그리고 <모나리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들이 진열된 장소는 그래서인지 특별한 곳으로 배려되어 있다. <모나리자>는 방탄유리로 가려져 있어 더욱 사람들의 눈길을 끌게 한다. <모나리자>에 못지않은 다 빈치의 대표작 <성 안나와 성 모자> <암굴의 성모> <수태고지> <세례 요한><이사벨라 케스케의 초상> 등이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의 값은 얼마나 될까. 간단히 생각해도 <구세주>의 배는 되지 않을까. 경매에 나온다고 가정한다면 이야말로 천정부지로 그 가격을 쉽게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세기의 뉴스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가격이 책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는 데 있지 않을까. 어느 특정한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소유이기 때문에 값은 책정될 수 없을 것이다. 만인이 공유하는 데서야 말로 그 작품이 지닌 위대함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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