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현재 전국적으로 16개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지역문화재단이 설립돼 활동하고 있다. 1997년 경기문화재단을 필두로 1999년 강원·인천, 2001년 제주재단이 설립됐고 그 이후 연차적으로 설립된다. 2016년에만 전북, 세종시, 울산 등이 설립됐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처럼 광역문화재단을 설립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일반행정에서는 문화예술진흥의 다양한 층위의 요구들을 수용하고 이를 추진하는데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문화직렬마저 설치돼 있지 않은 지방행정과 순환보직의 인사시스템 내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특수영역인 문화행정을 펼치기에는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필자는 지역예술의 현장에서 30년을 활동해왔다. 80년대 민중미술운동, 4·3미술운동이 필자 작가이력의 전 생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림이 안 팔리는 가난한 예술가의 삶과 레드리스트와 블랙리스트 작가로서의 삶도 늘 끼고 산 인생이다. 특히 '동네심방 안 알아주는 문화'는 여지없다. 그런 필자가 어쩌다 재단 이사장을 맡아 일을 좀 해보려고 했더니 '문화계의 차은택'이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챙기는 문화권력' 운운의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는 인간적인 참담함을 어쩌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묵묵히 일을 하는 이유는 재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예술을 위한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사업들을 발굴해내고 이를 지역문화생태계에 제대로 공급하고 정책적 방향을 유도하는 일이 이제 재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단을 혁신하고 조직적으로 정비·안정화해서 역량 있는 일꾼들이 바지런히 일을 해내게 하는 게 중요하다. 타 지역이 재단을 만드는 이유도 매 한가지일 것이다. 소위 전국적으로 광역재단에 빠삭한 어느 회계법인 대표의 언급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이는 어른인데, 몸은 아이'라는 지적 말이다. 그래서 몸도 어른을 만들어 제대로 써먹으려 백방으로 뛰었더니 이번에는 '재단 몸집불리기'라는 지적이 돌아왔다. 

지난 번 글에서도 약간 언급한 바 있지만 광역재단은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무늬만 지방자치라고 욕먹는 대한민국 지방자치제도의 어쩌면 가장 성공한 산물이다. 다른 기관과 달리 지역문화재단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해 설립한 조직으로 기본적으로 분권적이며 그 자체로 지역적이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특히 중앙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지역자율적인 성향이 강하다. 이미 분권을 넘어서서 자치의 시대로 가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그런 시대적 대세 속에서 광역재단은 지역문화예술진흥을 위한 공공 정책전달시스템으로서 제주도에 정책적 사업을 제안하고 창의적인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사업들을 챙겨주는 지역문화예술가와 도민들에게 톡톡히 그 역할을 해내는 쓸만한 도구가 돼야 할 것이다. 머슴에게 일을 시키려면 잘 먹여야 한다. 그래야지 제대로 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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