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성 전 제주도의회 의장·논설위원

흐르는 결량의 시간이 정유년과 무술년의 경계선 세월의 마디를 코앞에 세워놓았다. 지나온 날들을 냉정히 반성하며 새해 설계와 실행을 다짐하는 시점이다.

거리에 성금 모으기 캠페인 홍보 판이 세밑을 실감케 한다. 이웃을 배려하고 나눔은 우리민족이 유사 이래 지켜온 생활 방식이요 미덕이다.

반세기전 까지만 해도 집을 지을 때는 온 동리 사람들이 모여 흙을 짓이겨 축담을 쌓고 지붕을 엮는 소위 흙질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냈다.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입소문으로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함께 문제를 풀어 나온 것이다.

1997년 IMF로 인해 잘 나가던 대한민국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이자율과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주식은 폭락하고 기업은 부도나고 실업자는 늘어나는 국가 경제위기를 당하자 주저없이 발동한 것이 장롱 속 '금 모으기 운동'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100여 년 전 1907~1908년 나라 빚 1300만원을 갚기 위해 남성들은 담배를 끊고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들을 내놓아 경제위기를 극복한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이다. 인류역사 이래 가장 짧은 기간에 세계가 감동하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며 원조 받던 나라에서 지원하는 나라로 변신한 기적의 주역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뿌연 안개 속을 헤매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물질 중시의 발전으로 생활의 풍요는 가져왔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선지 1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3만 달러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도를 넘는 개인주의와 집단이기주의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 시대 처방전은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그 이유는 사회공동체의 버팀목이요 상생 발전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공감하면서도 나서기를 주저케 하는 일부의 무관심이다. 그러나 희망은 자라고 있다. 근자의 포항시 지진과 같은 돌발적 국가재난 극복을 비롯해 연말연시 모금운동·아너소사이어티 등 고액기부 문화가 희망을 심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 중앙일간지에 '1만원 십시일반고학생 등불이 되다'라는 기사를 감동적으로 읽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고려대 3학년 서 모씨(25)는 고려대프라이드 클럽 장학생이 됐다.

한 달 생활비 40만원으로는 학교식당에서 밥먹고 공부하며 휴대전화요금을 내기에 벅찼다. 그러나 장학생이 되면서 한달에 20만원 씩 지원 받게 돼 충분하지는 않지만 목표에 한발 다가서기에 충분하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 큰돈이 아니더라도 후배들을 꼭 돕겠다며 감격한다. 월 1만원씩 기부하는 회원이 3500명 정도인 고려대프라이드클럽은 출발 2년 만에 누적 기부금이 33억 원을 넘었다고 한다. 우리는 '다수의 소액 기부' 취지의 이 클럽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십시일반'의 핵심은 생일, 입학, 졸업, 취직, 결혼 등 각자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날에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서민 나눔 문화다. 

소수다액기부·다수소액기부는 수레의 양쪽 바퀴처럼 나란히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서도 다수 소액기부 즉 십시일반을 중시하는 이유는 내가 참여해야 한다는 주인의식과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동주공제(同舟共濟)의 운명체 의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잘 살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존재이지만 힘을 모으면 잘 숙성된 콘크리트처럼 그 어떤 파고도 넘을 수 있는 단단하고 강인한 힘을 가지게 된다. '모다 든 돌이 가볍다'는 우리 속담이 만고의 진리인 것처럼 십시일반은 굴곡진 역사의 파고를 해쳐온 공동체의 파워엔진이다.

무술년 새해! 한 사람은 두 사람의 지혜를 넘지 못한다. 일인불과 이인지(一人不過 二人智)라는 가르침을 깊이 새기며 우리 함께 작은 정성으로 큰 희망을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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