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혜로운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고 용감한 인물에 의하여 이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듯이 사실 한 사회나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데도 용기있는 사람의 결단력이 사려깊은 지성인을 앞질러 나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색이라 할 만합니다.

미국의 어느 광고 대행업체가 실시한 통계조사에는 퍽 재미있는 분석이 나왔습니다.사업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약 2500명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귀하는 어째서 그 일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압도적인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결단력의 부족 때문에…”.

현대는 자기의 의사를 분명하게 하고 신속하게 결단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입니다.그래서인지 ‘뛰면서 생각하라’는 표어를 사시로 정해 놓은 곳도 있습니다.어느 경우에나 햄릿처럼 회의와 의혹속에서 주저하거나 우유부단하면서 “To be? Or not to be?”만을 거듭한다면 우리는 함께 가는 대열에서 낙오하거나,역사의 진보에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면,미치 양손에 떡을 갖고 있는 아이처럼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가는 사냥꾼처럼 결단력이 부족하고 따라서 용기와 신앙 신념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때문에 신앙의 사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모세’역시 포기함에 있어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애굽의 왕실과 호화로운 생활을 포기하므로 한 민족을 구출해 내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Erich Fromm은 「소유나? 존재냐?」하는 그의 책에서 거듭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람직한 새 인간상은 온갖 종류의 소유를 포기하는 데서만이 가능하다”

해방 직후 너도 나도 38선을 넘어 월남할 때의 이야기입니다.해주에서 어떤 사람이 가족을 데리고 깜깜한 밤을 이용하여 작은 보트를 타고 이북을 떠나 월남하기로 하였습니다.이들은 어두운 밤,숨겨 놓은 배에 식량과 식구들을 싣고 남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드디어 동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는데,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밤새 노를 젓긴 저었는데,배는 여전히 부둣가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습니다.알고 보니 배의 닻줄을 끊지 않고 계속해서 노를 저었던 것입니다.끊어버려야 할 닻줄을 끊고 노를 저어야 배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은 아무리 앞으로 가려고 해도 가지지 않습니다.전진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결코 전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가 곧 올 것입니다.과거를 끊어 버리는 용기,지난 날을 포기하는 용기가 있어야만 우리에게는 약속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전통과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마십시오.그런 분들에게는 미래가 열려지지 않습니다.지난 날을 잊어버리고 과거의 소유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내 삶과 생명까지도 용감하게 포기하는 용기를 지닐 때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려질 것입니다.

우리,포기하는 용기를 가집시다.과거에 잘 살던 것,지난 날 대접 받던 것,옛날의 명예,직장,가문,전통,학식,그리고 심지어는 지난 날의 내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포기하는 용기를 가집시다.실로 어제의 포기는 내일의 획득입니다.과거의 단절은 미래의 새 세계를 열어주는 출발입니다.〈이정훈·모슬포교회·목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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