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글귀가 있다. 지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그러므로 '새것에 대한 기대치와 희망'을 담아내는 취지와도 관계된다. 한해가 바뀌는 전환기를 의식하며 '새로운 기대감에 젖어'온데 따른 것이다. 제주도의 신구간풍습도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사이'를 순조롭게 이어가려는 의미에서 같은 맥락이다.  

시간변화는 연령에도 적용된다.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변화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의식하여 '소년이로(少年易老)의 글귀'를 내놓았다. 눈에 띠는 것은 세대(世代)와 연계해온 점인데 청소년층이 신세대인 반면 노년층을 구세대로 구분해왔다. 전자가 의식에서 앞서가는 진취적 성향이라면 후자는 과거에 집착하는 보수성향이다.

이런 대조적인 모습들은 주택에도 적용되어왔다. 새롭게 지은 집을 신(新)옥, 오래된 집을 구(舊)옥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덕수궁에는 오랜 세월동안 '한옥양식이 주축'을 이루어왔다. 

하지만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신궁(新宮)이 혼재'하게 됐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중화(中和)전이라면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석조전이다. 고종이 선호해온 것은 후자다. 이런 풍조는 백성들에게 '새것에 대한 선호도'를 낳게 했다.

주택양식은 집산(集散)과정에서 '신구(新舊)양식으로 양분'하며 지역차이를 드러낸다. 서울의 북촌과 남촌은 대표적인데 청계천이 경계선을 이룬다. 청계천이북의 북촌(北村)은 한옥으로 채워졌는데 '양반들이 거주해온 전통'과 관계된다. 이에 반하여 남쪽에 자리한 남촌의 경우 서구(西歐)식이면서 백화점과 은행들이 들어섰다. 

신구개념에 적용할 경우 북촌이 구(舊)촌인데 반하여 남촌은 신(新)촌에 해당한다. 후자는 다시 '도성(都城)밖으로 확산'되면서 '서구종교가 설립한 대학촌'이 자리하게 됐다. 압록강하류의 변경(邊境)에도 신도시가 조성됐는데 의주는 예전부터 '중국을 왕래하는 관문'으로 알려졌다. 일본세력이 한반도를 거쳐 만주로 진출하면서 의주는 '대륙의 통용문으로 탈바꿈'해갔다. 

이것이 신도시(newtown)건설로 이어진 계기면서 본거지와 다른 신의주를 탄생시켰다. 의주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지만, 모시(mother city)를 앞지르면서, 발전단계를 거쳐 왔다. 그만큼이나 '신사조(新思潮)는 시대를 앞서'가며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선호열풍을 불러왔다. 이런 흐름은 신대륙발견과 더불어 본격화됐고 세계문화중심축이 '대서양을 건너가는 황금기(golden age)'를 열었다. 

신대륙은 유라시아대륙과 대척(對蹠)상태에 놓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와 유럽의 연결통로'가 되어왔지만 '구(舊)대륙의 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반대로 신대륙의 경우 '신흥적인 의미'를 띠었는데 미국은 이곳에 자리한 대표적인 나라다. 그래서인지 동부로 갈수록 '뉴(new)자의 지명'이 탁월하지만 '역사가 짧은 것이 흠'이 됐다.

그러나 세계를 영도하며 '인류의 관심을 모으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이것이 문화적 가치마저 '신사조에 치우치게 만든 계기'였다. 이런 흐름은 광복이후에 친미(親美)관계에 놓인 '한국을 향해 파급'됐다. 

그 결과 모시(母市)와 '별개의 신도시건설'로 이어졌고 서울주변의 일산과 분당은 대표사례로 남게 됐다. 이런 흐름은 변방인 제주도에도 밀려왔다. 

그래서 옛날의 관도(官道)와 다른 '신작로(新作路)를 등장'시키는 한편, 읍성(邑城)과 차별된 '신(新)제주의 건설단계'로 발전해왔다. 심지어는 국제관광시대를 맞이해 '신공항까지 조성'하게 됐다. 이럴 때일수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고전적 지혜'를 떠올리며 '새것만을 추구하는 편향성'에서 벗어나는 한편 '묵은 것에 대한 가치'와 함께 올바른 지혜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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