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문화부국장 대우

새해 다짐을 곱씹는다. 이제껏 해보고 지키기 힘들었던 것은 일단 후순위로 밀어뒀다.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애써 골라냈다고 했지만 벌써 몇 개에는 이미 두 줄을 긋는 것으로 포기 선언을 했다.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해보니 목표 자체가 무리라서, 올해도 여유는 없을 것 같아서,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아서 등 누구도 인정할 만한 그럴싸한 것들이다. 둘러보니 혼자 그런 것 같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여러모로 씁쓸하다.

'포기 선언(?)'을 한 것 중에는 제주의 대중교통 우선 차로제 위반 차량 단속이 있다. '도로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이유를 댔지만 지역사회 내부에서는 "그런다고 바뀔 줄 알았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확히 따지면 위반차량에 대한 과태료 부과는 2월말까지 유예됐다. 특정구간에 차량 위반이 집중된 때문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개선책을 마련한다는 복안도 내놨다. 제주 도로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이 단속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유는 더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다.

대중교통우선차로제가 시행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제주공항-해태동산 구간에 중앙우선차로제가 도입됐고 11월에는 광양 네거리-법원 네거리 구간이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공사기간까지 포함하면 홍보 기간도 상당했다는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결과는 예상 범위를 넘어섰다. 단속대상인 광양사거리~아라초 사거리 구간과 공항~해태동산 구간, 가로변차로인 무수천~국립박물관 구간에서 하루 평균 500건 이상의 위반 차량이 나왔다. 

공항로에서 적발된 차량의 50%가 렌터카였고, 가로변차로제 단속에 문제가 지적됐다. 이미 예견됐다는 말도 나온다. 가로변차로제 도입 구간은 공사가 진행될 당시에도 교통체증으로 인한 문제가 심심치 않게 지적됐었다. 

중앙우선차로제 도입에 대한 관광객 대상 홍보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시범 운영이 운전대를 잡은 도민의 몫이였는 지도 묻고 싶다. 단속 유예 입장을 밝히며 '대중교통 우선차로 모니터링 용역'이 현재 진행 중이라고 고백하는 상황은 어딘지 낯간지럽다. 

심지어 단속을 위한 폐회로 텔레비전 설치가 지난달 중순에야 끝난 상황도 노출됐다. 이 정도면 제도의 조기 정착을 위해 홍보 보다는 '단속'이 급했다는 해석도 나올 정도다.

영화 '1987' 속 여학생 연희의 대사가 떠오른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젊은 혈기에, 아니면 시대적 사명 비슷한 이유로 주먹을 불끈 쥘 때마다 기성세대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어느 샌가 기성세대의 일부가 된 내가 종종 푸념처럼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말이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냐면 결단코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양심과 현실의 부조화를 꼬집는 거창한 의미까지 부여하지 않더라도 '변화면역(Immunity of Change)'이란 상대를 만만하게 보지 않겠다는 다짐 정도는 된다. 

사람이다 보니 안정적인 것이 좋고, 편한 것이 우선일 수 있지만 그것을 바꾸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일은 그래서 보다 더 신중하고 오래 공을 들여야 한다. 적어도 '선제적 대응'과 '명확한 밑그림' 같은 것이 필요하다. '힘들면 바꿀 것'이란 판단은 이미 고루하다.

'츠타야 서점' 성공 신화를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의 "기획을 시작하고서 관계자에게 연락하기 까지 2주 동안의 시간이 있다면 절반인 1주는 스스로 생각해도 되지만 적어도 똑같은 시간을 상대에게 줘야 한다"는 조언도 보태 본다. 도정이 '대중교통 활성화'를 놓고 고민한 시간만큼 도민과 그 이상에도 적응할 기회를 줘야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들을 설득하는데 그만한 기회비용은 아깝지도 과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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