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할아버지 이거 날마다 실천하세요?" 오랜만에 내려온 손자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건강을 지킨답시고 붙여놓은 '하루의 운동'이라는 걸 보고 묻는 말이다. "그거? 요새는 잘 못하고 있는데…" 게으름 피우며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움. 2년 전 추석명절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숙제를 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쉬운 운동을 해보자. 자, 모두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은 다음 다시 최대한 뒤로 뻗어라." 직접 시범도 보여줬다. "오늘부터 매일 300번을 반복하는 거다. 할 수 있겠지?" 

학생들은 모두 웃었다. '너무 쉽고 간단한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나 선생님이 물었다. "날마다 300번씩 꾸준히 한 사람?" 90%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또 한 달이 지나서는 60%, 1년 뒤에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플라톤 이야기다.

끈기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자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끝까지 노력하면 할 수 있기 때문에 쉽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쉬우면서 어려운 끈기의 차이가 바로 게으름뱅이로 사는 평범한 사람과 성공하는 사람을 가름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한때 끈기 있는 민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끈기보다는 '한탕'을 생각하고, 외국에 나가서도 '빨리빨리'를 트레이드마크처럼 달고 다닌다.

결혼 8년 만에 남편과 헤어진 여자가 먹고살기 위해 분식집을 했는데 장사가 잘 됐다. 장사에 몰두하다보니 아이들 돌보기가 어려워졌다. 다행히 전 남편이 아이들을 맡아주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사흘 동안을 아무 것도 안 먹고 울었다. 울다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다짐했다. "사법시험을 보자!" 서른여덟 살에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가 공부를 했는데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아이들을 키우던 분식집아줌마로선 너무 힘든 도전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10년 만에 합격했다. 5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송파구청장 선거에 나가 당선된 박춘희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그가 한 말을 함께 기억하고 싶어서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 기간을 좀 짧게 잡는 것 같아요. 며칠 밤새웠다고, 몇 달 열심히 했다고 인생의 꿈이 이뤄질까요? 몇 년 동안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 성공 못할 수도 있어요. 그게 인생이겠죠. 하지만 그런 최선을 다한 실패가 쌓여서 더 큰 성공을 하는 게 인생이기도 해요."

2018년 새해가 밝은 지 보름. 우리는 새해 어떤 꿈을 세우고 또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젊어 한때 내 나름 버둥거리며 살았던 때가 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자, 일찍 일어나자,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자, 술 마시지 말자, 담배를 끊자, 시간 잡아먹는 화투 같은 잡기(雜技)는 멀리하자 등 많은 다짐을 했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었다. 며칠을 가지 못해서 실패하기 일쑤였다. 혼자 다짐하면서 만든 쪽지 '이번에는 꼭!'을 화장실 거울과 식탁 앞, 컴퓨터 모니터와 서가(書架)에까지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나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에게 보이겠다고 '금주(禁酒) 다짐'을 만들어 코팅까지 해서 지갑에 넣고 다니기까지 했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나약했으면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부끄러운 내 모습이다.
나에겐 아직 '소크라테스의 숙제'가 남아 있다. 세상을 더 알고 싶다. 많은 분들께 진 빚도 갚지 못했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그때까지는 멈추지 말고 움직이면서, 배우고 생각하는 삶, 고마움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머리로 생각할 수 있고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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