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 한국폴리텍대학 제주캠퍼스 융합디자인학과 교수, 논설위원

천혜의 해안경관을 가진 제주도는 사시사철 각각의 매력을 뽐내는 아름다운 바다를 가지고 있다. 50여개의 해수욕장?해변이 있어 몇 분만 운전을 하면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다. 여름 해변만큼의 활기는 없지만 겨울 바다만의 매력이 넘친다. 겨울바다를 즐기는지라 무엇에 끌리듯 어느샌가 바다로 향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하얀 백사장과 파도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케케묵은 감정도 쓸려 내려가는 듯하다. 추운 날씨이지만 제주의 겨울바다를 보러 온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모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낭만을 즐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먼발치에서 바다를 바라만보는 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넨 후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올 여름 제주도 해수욕장은 장애인ㆍ노약자ㆍ임산부 등도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갖춰보았으면 한다. 해수욕장 편의시설의 양적?질적인 수준을 높여 이들의 일상생활 반경이 축소되거나 외부활동을 하는데 저해되지 않고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이나 설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는 법률적인 측면을 기본적으로 하고 배려, 공감하는 차원에서 접근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휠체어나 유모차가 해수욕장 입구에서 바닷가 근처까지 갈 수 있도록 백사장 통행로를 만들어 가까이에서 바다를 보고 파도소리까지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해수욕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통행로의 폭은 양 방향 이동이 자유롭도록 2m 정도로, 만조 시 밀물 기준으로 안전한 곳까지 설치하였으면 한다.

이미 부산시 해운대구에서 해운대해수욕장 등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이른바 '배리어 프리' 해수욕장으로 조성한다는 취지로 운영한 사례가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는 웨스턴조선호텔 앞 해안도로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38m길이의 백사장 통행로를 만들었고 여름철에는 안내판 설치와 함께 도우미까지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백사장 통행로 자체가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설계하여야 하고, 통행로 주변에는 파라솔을 설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등 유니버셜디자인 측면에서 보완하여야 할 부분도 있지만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부착식 점자블록 미설치와 백사장 중간에서 길이 멈춰 파도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점 등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해운대에 와서 바다를 즐기고 느낄 수 있도록 설치를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던 것이다. 구두를 비롯한 신발에 모래가 묻을 것을 염려하여 들어갈까 고민하는 관광객들도 더는 주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유모차를 몰고 나온 임산부, 휠체어를 밀고나온 가족 등 제주 바다를 찾는 모든 분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통행로를 이용하는 날이 고대된다.

해수욕장 개장 전 장애인 편의시설 점검 및 모니터링 실시 시 관련 단체와 협의하여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보도의 폭, 휠체어 이동 시 노면의 경사, 장애인 화장실의 손잡이,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방해하는 구조물, 장애인화장실 문 앞 자동문 스위치 위치 등 보다 면밀히 살필 수 있어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활발한 외부활동을 유도함과 동시에 관심과 참여를 통해 더 가까워지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해수욕장이 하드웨어적인 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감동까지 전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필요로 한다.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시대성, 편리성과 함께 제주다움도 내포하여야 한다.

제주의 재료로 제주의 정서를 담은 공공벤치와 사인물 등은 해변 경관을 더욱 아름답고 이색적인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들이다. 연중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공간 마련과 방수케이스 비치, 물품보관 원스톱서비스 등도 이용객의 편의를 제공하는데 있어 고려해볼만한 사항들이다.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 즐거운 인생으로 연결되는 과정 속에 제주가 있었으면 하고 추억과 사진으로 회자될 때 아름다운 기억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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