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 단상

찾기 어려워 참 많이 그리운 것
온돌방 아궁이 가까운 방바닥

고시락 모아다 불쏘시개로 써
밧자리 희생으로 데워진 공간

그 날이었다. 섬 전체가 하얗게 변했던 날. 슬쩍 창문을 열고 "아 하얗다" 영혼 없는 감탄사를 뱉어냈다.좋다고 마냥 팔짝 팔짝 뛰기에는 너무 많이 내린 눈에 치여 비틀비틀 돌아온 길, 오랜 기억 속에 묻어뒀던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막 시렸져. 이 안자리더레 오라".(많이 추웠구나, 여기 아랫목에 와 앉아라). 이 계절이 오면 습관처럼 아랫목에 널어둔 귤껍질 말라 가는 향기가 코끝에 걸리곤 했었다. 그 '안자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의 향수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것은?". 무수히 많은 답이 쏟아진다. 광고 바람에 '호빵'을 외치기도 하고 따끈한 어묵 국물을 떠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좀 더 친절하게 질문을 해 본다. "요즘은 찾기 어려운 것, 그래서 참 많이 그리운 것은?" 아랫목은 적어도 세 번째 안에 나올 답이다.

그 아랫목을 제주에서는 '안자리'라고도 부른다. 특별한 의미는 없다. '온돌방에서 아궁이 가까운 쪽의 방바닥'이다. 웃어른이 앉는 자리기도 하다. 반대로 아궁이로부터 먼 쪽, 불길이 닿지 않아 덜 따뜻한 곳을 '밧자리'라고 했다. 윗목이다.

그래서 멀지 않은 옛날 외할머니는 찬바람에 코가 빨개진 어린 손녀를 '안자리'에 앉혔다. 절절 끓어 누렇게 탄 자국이 있는 것이 거슬려 슬쩍 발을 빼곤 했다. 가끔은 엄마의 헛기침에 엉덩이를 바닥에 끌며 '안자리' 다음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최첨단 난방 시스템 아래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폭설에 짓눌렸던 그 날, 아랫목 생각에 온수 매트의 전원을 눌렀다. 그리고 온종일 추위에 웅크려있던 등을 폈다. 은근한 불기운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해방된 듯 한 개운함이 다시 향수(鄕愁)가 된다.

△ 고시락, 솔방울의 추억

올해 68세가 된 친정 엄마의 기억을 털었다. 지금이야 스위치만 누르면 보일러가 돌고, 바닥을 덥히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물질간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을 업고 학교에 가야했고, 살림까지 도맡았던 외동딸에게 지난 추억이란 것은 즐겁지만은 않다.

읍·면 출신이다 보니 연탄이란 것을 15살 즈음 처음 봤다고 했다. 집집에 연탄을 들이는 풍경은 그 보다 2~3년 더 지난 뒤 봤다. 줄잡아 50여년 전 일이다.

그 전에는 솔잎을 걷어다 말려서 썼다. 보리 타작을 하고 남은 고시락(까끄라기)을 모아다 불쏘시개로 썼다. 고시락에 솔방울이며 말똥을 주워다 말린 것을 섞은 뒤 구들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 불이 있는 딱 그 곳에만 열이 난다. 고작해야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달궈지면서 그 주변도 데웠다. 그 기준으로 아버지가 앉고, 오빠들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와 자신은 늘 밧자리였다는 말 끝에 물기가 묻어난다. 서운하다기 보다 그리운 느낌이다. 항상 이불이 깔려있고 아버지 몫 밥이 뚜껑을 덮고 자리를 지켰다.

'고지에서 낭을 해다' 장작을 때는 것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집 일이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놀이를 하듯 산을 뒤져 순배기 나무를 잘라 말렸다. 고사리도 베어다 말려 불을 피웠다.

그 것도 방을 덮히는 용도인지 밥을 하는 용도인지에 따라 뭘 쓸지가 결정된다. 모든 추억의 끝은 늘 같다. "뭐 이렇게 말을 하면 아냐. 직접 해보지도 않았는데" 맞는 말이다. 그래도 그 안에 포개진 그리움을 느끼고 싶은 걸 어쩌랴.

△ 서로 몸을 기대 뒤척이고

그 느낌이란 것이 요즘은 책이나 인터넷 동영상에서나 보는 것들이라 설명하기 어렵다.

'고시락'부터 솔방울, 잔가지까지 특별한 쓸모없이 굴러다니던 것들이 서로서로 몸을 기대고, 혹은 몸을 뒤척이며 불꽃을 일으키고 탄다. 그 것이 모여 방을 데우고 사람 사는 냄새까지 만든다. 밑불이 자리를 잘 잡으면 계속 유지하는 것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되는 일이다.

모든 것이 어쩜 사람 사는 것과 닮았다. 부지런할수록 겨울나기가 수월해진다. 뭐 하나 버릴 것 없이 살뜰하게 챙기는 것도 한 몫한다. 그래도 한 때 치열하게 존재를 지켰던 것들의 흔적들이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고 나면, 불의 그을음과 티끌은 조용히 바닥에 남는다.

그 모든 과정은 한마디 잡언(雜言)이나 미련조차 없이 깨끗하다.

안자리야 늘 따듯했다. 어머니들이 자처했던 밧자리도 알고 보면 따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손뼘으로 한 둘레 정도, 잘해야 어른 엉덩이나 채우면 다행일 정도의 면적은 성스러운 영역이다. 불이 아니라 희생으로 데워진 공간이라 그렇다. 어쩌다 보니 새해다.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신경써 '안자리'까지 살피지는 못하더라도 고마운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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