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화가·논설위원
새해를 맞고 사흘째 되는 날,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며 계획했던 것들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라디오에서 작심삼일 얘기가 나왔다. 1일1드로잉을 새해계획 목록에 넣었던 나로서는 들으며 아차 싶었다. 마음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 새 놓치고 만 것이다. 마침 차창 밖으로 보이던 높은오름이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는 집으로 와서 조그만 드로잉북에 수채화로 그려넣었다. 내게 1일1드로잉이란 그날그날 내가 보고 느끼고 반응했던 것의 기록으로서 마치 일기처럼 지나온 시간의 흔적 을 남긴다는 의미를 뒀다. 또한 그림그리는 사람으로서 매일 한 점, 한 획이라도 드러내야겠다는 의지도 들어갔다.
작업을 하다보면 술술 풀릴 때 보다는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해지고 한 획 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시간이 꽤 길게 가서 초조해지기도 한다. 비단 그림그리는 이들 만이 아니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법한 일이다. 한 작가는 이런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방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들을 주워서 흰 종이에 붙이기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은 바 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쌓이는 만큼 붙여지는 머리카락들은 지나온 자기만의 시간들에 대한 시각화의 한 방법인 것이다. 해괴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작가들에게는 창작에 대한 고민과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이 쉽지만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들로 창작의 의지를 잃지 않고자 모색하며 지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일 것이다.
작심삼일은 고려시대 때 정책이나 법령이 사흘 만에 바뀐다는 뜻으로 쓰이던 속담이 조선시대로 넘어오게 됐고 사흘동안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한 번 시작한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할 때를 꼬집는 표현으로 쓰여져 왔다. 굳은 결심에 대한 나약한 의지로 해석해 부정적으로 쓰여지고 책망이나 반성이 따르는 말이다. 오죽하면 작심삼일하지 않게 도와주는 앱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사흘도 못 가 흔들릴 만큼 나약한 존재다. 게다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보다는 있던 것에 안주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결심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지내기 보다는 사흘도 못 갈 만큼 매번 흔들리는 우리들의 여린 마음을 사흘에 한번쯤은 돌아보고 살펴봐 줘야 한다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앞만 보며 세상의 흐름에 맞춰 바삐 쫓아 갈 때 우리의 마음도 함께 쫓아오고 있는지, 이 기회에 우리 안에 늘 있으나 무시하거나 잊고 살았을지도 모를 우리들의 마음상태는 어떤지 살펴보는 일을 사흘에 한번쯤 해 주는 의미로서 말이다.
새해도 스무날이 지났다. 해맞이를 하며 굳게 다짐했던 목표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 힘차게 나아가고 있으리라. 내 1일1드로잉의 결심도 3주째 이어지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안녕하다. 앞으로 어쩌다 하루 이틀 건너뛸 때도 있을 것이고 어느날 문득 마음이 변해서 그만두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나고보면 그날그날 결심한 만큼의 드로잉은 쌓여져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볼 일이다. 잘 살아보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일에 굳은 결심 못 지켰다고 자책하며 자존감 상하게 할 일 없지 않은가.
언어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변하듯 부정적 의미의 작심삼일보다는 새해에는 사흘에 한번쯤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독이며 보살펴 주는 의미로서 작심삼일 해 볼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굳은 결심을 지켜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은 삼일 넘게 가져갈 필요가 뭐 있겠나. 그냥 하루만 실행하자. 딱 오늘 하루만. 절실하게. 매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