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육성위원·논설위원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제줏말을 보전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제주지역 언어’를 줄여 제주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므로 제줏말이라고 할 때는 표기가 아닌 표음으로 구전하던 말뿐이지만 제주어라고 해야 말과 글까지 포함한다. 그리하여 제주도에선 제줏말 전문가와 제주출신 국어학자들이 모여서 ‘제주어 사전’도 발간하였다. 제줏말을 시로 쓰는 사람으로서 표기가 자유로운 글을 얻었으니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

제줏말로 시를 짓다보면 야개기가  토리롯해질 때가 있다. 야개기는 인체의 목에 해당하고 은 아주 작게, 토리롯은 표준어로 갸우뚱에 가깝다. 토리롯과 갸우뚱을 저울에 달아보면 갸우뚱이 더 무거운 느낌이 든다. 토라롯은 생각을 다양하게 하기 위하여 고개를 비켜 세운 것인데 갸우뚱은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었으니 머리가 무거워서 아플 수도 있다.

제주사람들의 생활이 조선시대에 이르러 진상품이 기증되어 바치느라고 반 이상이 노비 신세나 같았다고 한다. 바빠서 저를이 없는 상황이라 바람이 어질러 놓거나 파도가 소리 전달을 방해할 때가 많아 최대한 줄여서 써야 했고 말소리가 비교적 컸다. 그래서 ‘홈마’가 하마터면, 홈치는 한 번에 다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문맹자가 많다보니 들은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한자 발음이 표준어와 달라진 것도 생긴다. 권당이 궨당이 된 경우다. 형님을 성님이라고 하다 보니 형님이 성님으로 굳어진 경우다.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제줏말이 발음하기 쉬운 방향으로 흘렀음도 감안하면 제주어를 배우기가 훨씬 쉬어진다.

제주어의 흐름을 유추해 보면, 14세기 고어가 남아있다고는 하나 미미한 편이고, 몽고 지배를 백년이나 받았지만 몽고 서민들이 집단적으로 와서 살면서 제주도민과 일상생활을 공유한 적이 없어서 몽고말도 거의 없다. 다만 일본은 개화기에 서양 문물을 도입한 언어 군이 일제강점기에 거의 강제적으로 쓰인 단어가 제주어에 많이 남아있다. 다행이도 일본식 한국어라는 사실을 바로 알고 순수한 제주어로 전환한 경우가 많아서 안도한다.

제주어는 제주도 사람들이 상황에 맞게 지어내서 쓰기도 했다. 특히 의태어와 의성어의 활용은 천부적이다. 예를 들면 ‘숨을 볼락볼락 쉬면서 입을 아웃아웃하더니 목에서 할강할강하는 소리가 나고 숨이 끊어지려는지 고웃고웃하면서 매기독딱이더라.’라고 말했다면 숨 쉬기가 어려웠는지 가슴께가 들썩거리면서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가 하더니 목이 메여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나고서 고웃고웃 숨을 고르더니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가 된다. 여기서 루라는 말은 고개 마루 같은 지형인데 땔나무 짐을 지고 높은 고개를 넘어오다 보면 숨이 죽을 정도로 가빠지는 곳이라고 해서 ‘고우니 루’라는 지명도 있음을 상기하자. 제주어로 매기독딱은 맥박이 똑딱똑딱 규칙적으로 뛰다가 그만 똑… 딱하고 멈추어버리면 말짱 황이라는 의미다.

제주어로 때를 나타내는 말로 ‘리’가 있고, 장소를 나타내는 말로 ‘시’가 있다. ‘모멀고장 벨라질 리’는 메밀꽃이 필 무렵이고, ‘으남이 직각헌 시엔 고사리가 한다’는 말은 안개가 자욱한 주변엔 고사리가 많이 돋아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나타내는 시제로는 ‘리갈름’이라고 구분하면 편하다. 특히 처소격處所格인 ‘듸’를 살리고, 사유격事由格인 ‘디’를 구분해야만 뜻풀이가 수월해진다.

무가 삐, 채소 같은 것을 퀴라 하는 말 줄임, 숙데기다와 헤쓰다, 할트다 와 할르다의 차이, 마씀과 마씸의 다름이나 할미꽃을 제주어로 하래비고장이라고 하는 속사정을 알고 보면 제주어의 진면목은 기가 막힌다.

제주도정에서 다시 제주어 사전을 발간할 것이다. 이왕이면 졸바로 줄을 팽팽하게 당겨서 구짝허게 펴주길 바란다. 구짝에도 과짝이 따로 있다. 구짝은 직진이고, 과짝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공 포신으로 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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