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남북고위급회담(南北高位級會談)이 지난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이어 지난 15일 북한 예술단 논의, 17일 차관급 평창 실무회담,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와 만나 올림픽 참가협의를 마무리했다. 새해 들어 잇따라 고위급 회담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수년간 남·북간 교류가 끊겨 얼굴을 맞댄 것도 몇 차례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 회담 패턴과 비교해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는 올해 1월 1일 북한 김정은이 신년사(新年辭)에서 평창올림픽을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동족의 경사를 같이 기뻐하며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하면서 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파견과 당국 회담 뜻을 밝힌 것은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계기로 만들자는 우리의 제의(提議)에 호응한 것"이라고 받아드린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남북정상 간의 직접적인 발언과 간접적인 교감으로 남측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북측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해서 열린 것이 남북고위급회담이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은 평창올림픽 성공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군사적 완화 등 평화 환경 마련을 위해 공동 노력하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민족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등 3개 항의 합의문을 이른바 공동보도문에 실었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선진국들만의 올림픽이라는 동계올림픽을 3수(修)의 끈기(-氣)와 노력(努力)으로 유치한 세계인의 잔치란 점에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88 서울올림픽이 세계의 변방에 머물고 있던 한국을 세계의 한국으로 부상시켰듯이 평창올림픽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동계올림픽을 치룬 선진 7개국(G7·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반열에 올려놓는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우리와 평화 이벤트를 벌이겠다는 북한의 제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기에 앞서 그 배경과 저의에 숨겨진 덫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김정은의 이번 제의란 김일성 때부터 해오던 수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다가 북한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염원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북한이 쳐 놓은 덫으로 걸어 들어가는 우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런 우를 범한다면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역대 최대 규모의 인원을 파견한다고 하는 데는 한국을 절차상(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문제로) 난처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없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평창의 잔치를 평양의 잔치로 변질시키면서 정치 선전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닌지도 눈여겨봐야 한다.

동시에 조명균 수석대표의 비핵화 언급에 대해 리선권이 격한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모든 최첨단 전략무기는 철두철미(徹頭徹尾·머리에서 꼬리까지 통한다)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을 때 북한의 전략목표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면 그건 곧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한 것과 같다고 하지 못한 것도 되돌아봐야 한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전략무기의 사용은 전술상 미국의 반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주한미군기지에 대한 선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조명균 수석대표는 리선권에게 미국은 우리의 '동맹국'이란 한 마디를 놓치지 말고 던졌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한·미 상호방위조약에서 상호(mutual)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북한에 각인시킴과 동시에 우리의 동맹의지가 확고함을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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