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덕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사람들은 월 단위 또는 연 단위로 경계 짓기를 하면서 아쉬움과 기대를 표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물론 나이와 직업에 따라 시간을 인지하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학생들은 신학기와 방학이 연중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반면 직장인들은 1월과 7월, 12월을 나름대로 분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래도 현재 자신의 입장이 어떻든지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년 12월이 되면 마음이 분주해진다.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아니면 계획 중에 일부는 새해로 넘겨야 할지 등 반성과 아쉬움, 위로 등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곳곳의 회계연도와도 연동돼 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는 연중 가능한데 그 일을 마무리하고 돈을 지불하는 것은 거의 12월 말이면 종료되는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이 시스템에 맞추어서 무지 바쁘게 움직여야 하고 어떨 때는 12월인지, 일을 끝내야 하는 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또한 느슨하게 진행되던 각종 모임과 회의 등 회합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리면 12월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12월에는 거의 바쁜 일상을 보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형성돼 있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허겁지겁 일을 해치운다는 인상도 풍긴다. 

이는 12월에 모든 일들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묵은해의 일을 새해로 넘기지 않으려는 다짐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면서 오늘의 분주한 삶을 위로하고 다가오는 새해에 무한한 애정을 표현한다. 그 새해라는 것이 사람마다 좀 다르게 인식하는 것 같은데 이는 우리 사회의  문화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태양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부 풍속에서는 태음력을 사용하고 있어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다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양력 설(양력 1월 1일)과 음력 설(음력 1월 1일)이 공존하면서 새해를 두 번 맞이하는 꼴이다. 

일반적으로 새해라고 하면 양력 1월 1일을 가리키며 새해 첫날에는 다양한 행사들이 추진된다. 또한 우리 각자는 새해에 소망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그래서 12월이 바쁜 달이기도 하다. 개인차는 있지만 양력과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것은 자기 위안이 필요하거나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생활문화는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듯이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음력설(설날)을 지내면서 세배를 하고 이때야 비로소 새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1월은 들뜬 상태로 보내면서 새해에 세운 계획을 차분히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좀 있으면 음력설이 돌아오고 그때가 되어야 정말로 새해가 되기 때문에 긴장하고 다짐하고 일 년을 경주할 준비태세를 갖추게 된다.

현재 나는 묵은해와 새해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새해가 됐지만 작년과 같이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없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도 못하고 있다. 좀 있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새해가 올 것이니까(음력 설 기준), 그때까지는 작년에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녀본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12월을 성찰의 달로 여기고 자신의 계획표를 점검해 보면서 새해를 설계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연말인지 연초인지 무덤덤하게 보내기도 한다. 이제 새해에 대한 이중의 잣대는 올해로 끝내고 다음부터는 1월을 새 달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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