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호주 오픈의 남자단식 우승컵은 결국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에게 돌아갔다. 테니스 코트의 황제는 그랜드슬램(grand slam)에서 처음 우승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며 순수함과 겸손함을 드러냈다. 기승전 페더러. 15년 넘게 최강자의 지위가 유지되고 있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 정현이 있었기에 우리들의 관심은 예년보다 훨씬 높아졌다. 어떠한 위치에서도 모든 구질의 공을 유연하게 처리해냈다.

"한국 선수에게서 저런 경기력을 볼 수 있을까" 의심했던 그 모든 기술과 힘을 보여줬다. "세계정상과의 차이가 얼마일까"라는 것이 궁금했지만 안타깝게도 발바닥의 고통이 진검승부를 가로막았다.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랄 뿐이다. 

근래에 한국 스포츠 스타들이 만들어내는 승전보는 예전에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성장했다는 증거를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하계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에 이어 동계올림픽을 새 달에 치르게 된다. "선진강국이나 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들만의 잔치라고 생각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난 해 오랜만에 가을 야구를 실시간으로 좇아가며 감상했다. 투수전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호쾌한 완봉승을, 운이 좋으면 노히트노런(No hit no run)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지만 헛된 꿈이었다. 살아있는 전설 샌디 쿠팩스(Sandy Koufax)를 노쇠한 모습이 화면에 잠깐 등장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야구의 규칙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경기력의 향상과 더불어 조심스럽게 승리를 챙겨야 하는 야구 산업은 완전히 다른 야구경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타자들의 공격력도 매우 좋아져서 어떠한 투수의 공이라도 세 번째 타석에서는 공략한다. 자연스럽게 투수는 일정부분의 역할을 마치면 교체할 수밖에 없다. 일곱 경기를 연속으로 완봉해 칠봉이라는 별명을 얻은 투수의 이야기는 이제 복고풍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됐다.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북한이 참여하면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교류와 협력을 넘어서 남북화해와 평화의 길로 안내하는 갈림길이 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여러 번 속아왔던 입장에서 경계하는 마음이 해이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많이 듣는다. 

올림픽의 뜻은 본래 전쟁을 멈추고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근대 올림픽 부흥에서도 세계평화를 향한 이상이 작동했다. 메달 경쟁은 선수 개인의 영광이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가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활용하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 냉전시대 양 진영의 경쟁, 혹은 독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시대의 국가주의가 이를 역행(逆行)했고 오용(誤用) 했다. 우리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전 국제 시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북한의 선수와 응원단 그리고 문화사절들을 따뜻하게 맞아야 한다. 애써 만들어 놓은 잔치에 공짜로 참여해 체제선전만 하리라는 의구심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남북이 경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체육과 문화의 교류에서 우리가 불안한 점이 있는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화통일의 길에 이러한 협력이 오해 혹은 오용될 가능성이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아직도 냉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세상이 달라졌는데도.

제주 사회에서도 4·3을 두고서 여러 가지 견해가 표출된다. 이제 70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두려움과 서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제주방문의 해로 정했으니 옛 원한에서 벗어나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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