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철 제주소방서장

갑작스런 대설 도민 안전 위협

이달 초 제주는 유례없는 한파와 폭설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도내 700여 농가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주요 도로가 얼어붙고 제주의 관문인 공항이 폐쇄되기도 했다. 제주는 그야말로 섬으로 고립돼 버린 것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재난에 대비하고 피해 예방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 새삼 돌아보게 됐다. 

지난 3일부터 내린 눈은 폭설 나흘째인 6일 제주 14.4㎝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이는 41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입춘대설이다. 평화로 등 주요도로는 통제됐고, 3일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5중 추돌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6일에는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져 9명이 병원에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같은 날 한라산 어리목 인근에서 관광객이 고립됐다가 3시간여 만에 구조되기도 했다. 

소방본부에서 집계한 통계를 보면 이번 폭설기간 제주소방은 화재 등 총 169건의 소방활동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행인 점은 그 많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치 않았다는 점이다. 제주는 원래 온난한 해양기후로 눈이 귀한 곳이다. 그래서 눈은 늘 반가운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이번처럼 갑작스레 쏟아진 눈에 대한 대비가 다소 부족했다는 생각은 비단 혼자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관계기관은 이번 폭설 당시 비상근무에 돌입, 대설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설장비와 현장출동 장비를 준비했다. 과거와 달리 신속하게 제주국제공항 항공기 운항정지에 따른 체류 관광객 보호조치는 물론 각종 사고현장에서 원활한 구명활동을 실시했다. 

이러한 노력과 준비에도 불구하고 도내 곳곳에서 사고와 피해가 발생했고 도민 요청을 다 수용하진 못했다. 경북 포항 지진과 2007년 태풍 나리 사례처럼 거대한 자연의 힘에 관 주도 대비 대응의 한계는 여실히 드러났다. 이번 폭설기간 역시 비슷하다. 행정력에는 한계가 있고 예측하기 힘든 자연 앞에서 결국 선택과 집중의 길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족한 행정력의 한계와 안전 사각지대 극복을 위해서는 도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 기상이 악화되면 스스로 시설물 점검과 월동 장비를 준비하고 낙상 등 사고에 유의하는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 또 고드름 시설물 붕괴 등의 위험을 발견하면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해 위험요소를 제거해야한다. 이러한 최소한의 노력에서부터 지역 안전망이 만들어지고, 안전 사각지대는 해소되는 것이다.

관 주도 한계, 협력으로 극복

이번 폭설기간 의용소방대의 역할은 도민에게 큰 도움이 됐다. 개인의 경제생활도 뒤로한 채 민간인 신분으로 지난 4일부터 비상근무를 실시했고, 취약 계층의 주택 안전점검 등을 실시함으로써 폭설로 인한 피해를 막는데 일조했다. 폭설 피해 현장으로 모든 행정력이 동원돼 있을 때 자칫 안전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민간차원의 지역안전망을 증명해낸 것이다. 제주는 아시아 최초로 제3차 공인에 성공한 국제안전도시다. 지역 구성원이 함께 안전한 사회를 위한 염원과 노력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가고, 이러한 지역 안전망의 지속 가능성이 국제안전도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행정은 자연재난을 대비한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소방은 어떤 재난사고에서도 인명을 구조할 수 있는 완벽한 현장대응태세를 확립하는 한편 도민 스스로도 사고를 예방하고 위험요소를 점검하는 안전 의식을 높여간다면 이번과 같은 자연재난은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이 있다. 이는 죽은 후에 약을 아무리 잘 써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다. 사전에 예방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물과 같이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제주안전도시의 지역안전망과 그 지속가능성을 점검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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