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몇 해 전 올레길을 걷다 처음 본 바닷가에서 검은 차광막으로 덮인 양어장 시설과 바다로 연결된 플라스틱 파이프들을 본 적이 있다. 광어 양식장이 많다는 것은 들었지만 막상 시설을 보니 규모에 좀 놀랐다.

그런데 며칠 전 양식장에서 금지된 공업용 소독제를 사용했던 양식업자들이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약재는 십여 년 전 한강에서 괴물이 나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내용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의 배경이었던 약물과 유사한 것이다. 제작자의 상상의 세계에서 독성 약물로 인한 한강 생태계 파괴가 괴물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유사한 약물이 회로 먹는 활어를 키우는 양어장에서 사용됐다는 것인데 물고기에 축적되지 않았던 잔류 유해 성분은 바다로 유입됐을 것이다. 

그 동안 돼지사육농장의 오폐수 불법배출 실태를 보여주는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농장을 직접 본적이 없어 밀식사육을 의심만 하고 있었는데 올 해 들어 제주에서 발생한 두 건의 큰 돼지농장 화재에 대한 보도 내용이 끔찍했다. 1월 돈사 1개 동 화재에 1200마리가, 2월 화재로 4개 동이 소실되고 돼지 2200마리가 타 죽었다는 것이다. 4개 동 면적이 1033㎡이라고 보도됐는데 1개 동 면적이 250㎡를 조금 넘는다. 대략 길이 25m, 폭 10m 공간에 500마리가 넘는 수의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다는 계산이다. 

닭장 같이 협소한 공간에 많은 개체들을 키우니 돼지들이 온전 할리 없을 것이고 발생하는 오폐수의 양 또한 상당할 것이다. 양돈 농장들은 대부분 큰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밀식사육은 농장주가 영세해서가 아니라 욕심의 결과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업자들이 엄청나게 발생하는 오폐수를 오염과 악취가 발생하지 않게 처리하려고 많은 시간과 돈을 쓰려고 할까. 그간 드러난 바에 따르면 폐수관을 남몰레 지하 깊숙이 묻어 버리고 밭에 살포하는 것이 더 흔한 선택이다.

최근 도 당국이 섬 북서부 지역 지하관정을 이용해 지하수 오염 상태가 심각한 것을 확인했다. 잘 할 일이다. 14개의 관정 중 9곳이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지하 20m 이상 깊이의 표본에서 오염을 확인했다는 것은 오폐수 지하 방류가 오래 지속됐다는 것을 반증한다. 

심각한 문제는 오염된 지하수를 단기간에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연적으로 정화되기를 기다려야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지역의 지하수는 향후 수 십 년 생활용수로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잦아지고 있는 가뭄에 물 걱정이 커져가는 시점에 듣고 싶은 소식이 아니다 

해당 지역뿐만이 아니다. 그 깊이로 침투한 오염 물질은 그 사이 알 수 없는 지하 물길을 통해 이미 바다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릴 떼 바닷가에서 물놀이하다 갈증을 해소했던 그 시원한 용천 담수가 이제는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오염된 물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양돈농장은 이익만 취하고 발생한 오염은 남들이 처리하는 결과인데 이는 경제학 개념인 부정적 외부효과의 전형적인 경우다. 지금까지 확인된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지역에서 산업형 돼지사육을 금지하는 것이다. 사육 규모를 10~20마리 정도로 제한해도 좋을 것이다. 

제주도는 이제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어서 생계유지를 위해 아무거든 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전국에서도 비만인구가 많은 것이 문제이고 방문객이 너무 많아 문제이고 부동산이 너무 비싼 것이 문제가 되는 곳이다. 

길게 보면 청정했던 제주의 땅과 바다가 더러워져 찾는 사람들 발길이 끊기면 지금과 같은 과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지 말기를 바라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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