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전 제주연구원장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를 지향하는 제주가 지속적인 인구증가와 난개발의 성장통, 공유자원의 부분별한 남용과 파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제주사회의 실현은 가능한 것일까. 도민의 삶의 질 향상과 제주도민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제주, 지속가능한 포용적 제주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유럽의 아이슬란드와 남태평양 이스터 섬의 교훈을 통해  제주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먼저 아이슬란드(Iceland)의 사례이다.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의 섬나라로 한반도의 1/4의 크기지만, 인구는 제주도의 1/2에 불과한 약 33만 명이 거주한다. 9세기 바이킹은 인구의 절대적 증가에 힘입어 정착지 개척에 나섰고, 그린란드에서는 정착에 실패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바이킹은 전통적인 산업인 목축업을 아이슬란드에 번영시키기 위하여 가축을 도입하였다. 숲의 나무들은 목초지 조성을 위해 베어졌고, 얼마 없어 숲의 대부분은 사라져 갔다. 

제주와 같이 얇은 화산재 토양의 침식은 심해졌고, 풀뿌리까지 파헤쳐 먹는 염소 사육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자칫하면 목축업은 고사하고 농사마져도 포기해야 하는 고민에 빠졌다. 

지속가능한 아이슬란드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주민 스스로 그것을 결정해 나가게 해야 할 것인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들은 과감한 사고의 전환을 통해 핵심가치를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지속가능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주산업인 목축업의 포기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힌 갈등과 반발, 정치적 저항이 없을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는 이를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한 합의적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스스로 선택해 나가도록 유도하였다. 

그 결과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주산업은 땅이 아닌 바다의 수산물로 대체되었다. 아이슬란드는 땅이 황폐화해져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 올바른 대책과 선택을 유도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해 나갔다. 

다음은 이스터 섬(Easter island)의 사례이다. 현재 칠레령에 소속된 이스터 섬은 제주도의 1/11크기. 인구는 약 6천 500명이다. 1772년 네덜란드 탐험가 로헤벤이 부활절(Easter day) 날에 발견 되었다고 하여 이스터 섬이라 명명하였다. 현지어로는 '커다란 땅, 화산섬'을 의미하는 '라파누이'라 불린다. 

 세계 불가사이의 하나로 알려진 약 900여 개의 '모아이' 석상이 이스터 섬 해안 절벽에 세워져 있다. 모아이에 대한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종족간의 경쟁을 유발했을 때만 해도 이스터 섬의 문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재앙을 맞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모아이 석상 운반을 위해 야자수 천국이었던 이스터 섬의 야자수는 짤려나갔고, 무분별한 자원의 남용은 식생의 황폐화를 초래하였다. 어업용 카누를 제작할 야자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대규모의 식량과 물의 부족은 인간 사냥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이에 더하여 1772년 이후 유럽인들이 옮겨온 질병에 의해 주민들이 희생되는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모아이 석상 운반을 위해 마지막 남은 야자수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낼 때까지도 이스터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자원의 남용으로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 야기되자 이스터 사람들은 서로 다른 종족간의 전쟁으로 결국 함께 죽는 재앙을 맞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바이킹은 숲과 토양이 황폐화되기 직전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어업으로의 산업 전환을 현명하게 선택했다. 적절한 시점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 내린 합의적 결정이었다. 그 결과 지속가능한 경제와 지속가능한 환경을 모두 실현하였다. 제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선택은 자명하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경제자본으로 질적 성장해 나갈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경제와 환경을 지역발전에 담는 혁신적 포용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