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낳던 날 아버진 딸의 병실로 조용히 들어오셨습니다. 아내가 병실을 지키고 있으리라 생각하셨던 아버진 뜻밖에 시부모님이 앉아 계셔서 부끄러운 듯 평상시 모습처럼 잔잔한 미소만 보내시더니 "고생했구나!"하고 한마디만 던지시곤 자릴 금새 일어서고 나가십디다.

 내 옆에 가까이 와서 늘 하시던 것처럼 안아 주실 줄 알았는데 그냥 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시집간 딸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시부모님이 가신 후 얼마 없어 2층 담당간호사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간호사 10년 동안 이런 친정아버진 처음이네. 어쩜 이렇게 감성이 풍부하실까? 애기어멍(아기엄마)은 좋으쿠다(좋겠네요). 아버지께 잘해 드립서(드리세요)"

 그녀가 전해준 것은 하얀 포장지에 둘둘 말린 장미꽃 다발이었습니다.

 아버진 당신의 딸이 제일 좋아하는 장미꽃을 선물함으로써 가장 큰 축하의 표현을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난 수술 후 느끼는 통증 때문이 아닌, 뭔가를 뒷춤에 감추고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시다 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아파 울어야했습니다.

 근데 그런 분이 지금은 안 계십니다. 몇 해 전 병치레도 없이 딸이 고생할까봐 그냥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가시는 날까지 아버진 딸만 챙기셨습니다.

 개학한 지 얼마 안된 지금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운 것은 당신도 나처럼 교단에 서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학기만 되면 정신을 빼버릴 만큼의 엄청난 일거리와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끝임 없이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과 다툼, 생각이 다른 고리들….

 1년 중 3월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만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요즘, 아버진 이럴 때 내게 뭐라고 조언해주실 지 궁금합니다.

 평생 소리 한번 안 지르시고 매 한번 안 드시고 해마다 어린이날만 되면 눈뜨기가 무섭게 옛날 이야기를 시작해 잠자리에 들 때서야 끝나는 그야말로 천일야화를 한번도 거르지 않고 내 나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해주셨고 학교에서도 제자들에게 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아버지.

 그래서 나도 당신을 닮아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나봐요.

 지금까지 당신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나 선·후배 교사들이 "훌륭한 교사였다"고 입을 모을 만큼 당신은 참 대단한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전 우리 반의 귀엽고 순수한, 때로는 멋모르고 덤비는 악동들을 사랑합니다.

 아버지께서 늘 제게 힘주어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진심은 통하는 것이고, 아이들은 사랑 앞에 거짓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지금 당신이 옆에 계시다면, "순욱아, 욕심내지 마라. 아이는 아이다. 서둘러 빨리 이뤄내려 하면 너나 아이들이나 다 속만 상할 뿐이지. 그러니 하나씩 풀거라"라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래요, 아버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상처 주는 교사는 되지 않을게요. 먼 훗날, 교사였던 삶이 결코 부끄럽지 않고 내 삶의 영광이고 자부심이었음을 알게 될 그 날까지 매일 매일 마음을 가꾸며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얘들아, 벌써 새벽이구나! 아침에 만나자. 사랑해.<양순욱·구엄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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