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 시인

3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의 여운과 함께 '미투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성폭력·성추행이 어제오늘 얘기도 아니고 왜 이리 떠들썩하냐는 목소리도 있다. 어쨌거나 그동안 권력의 횡포에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이제 제목소리를 내고야 말겠다는 용기와 의지인 것만은 분명하다. 

3·8 세계여성의 날이 11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1908년 3월 8일은 미국 여성노동자 1만 5000여명의 여성이 '빵과 장미'를 외쳤던 날이다. 

'생존'과 '인권'을 외치면서 뉴욕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 들은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빵)를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장미) 또한 포기할 수 없다'며 노동시간, 임금 인상,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여성이, 여성에 의한, 여성의 역사를 새롭기 쓰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로부터 110년이 흐른 지금, '여성에게 '빵과 장미'는 어떠한가' 자문해본다. 

여성, 우리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다. 4월의 푸른 바다에 300여명의 아이들을 묻었다. 그리고 이유 없이 공동 화장실에서, 거리에서, 파티장에서 여성들은 살해돼 왔다.

촛불을 들고, 노란 리본을 달고, 용기를 내어 언론 앞에 섰으나 이런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는 듯 하면서도 마치 "니가 하는 짓이 그러니 당했지"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주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답답함이 밀려온다.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게스트하우스 인근 폐가에서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온 20대 여성이 살해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경찰은 피해 여성이 목 졸려 숨진 것으로 판단했고 성범죄로 의심될 만한 정황도 발견했다. 이처럼 여성 여행자 살인사건, 이주여성 친족 성폭력 사건 등 매해마다 성폭력 사건은 늘고 있다. 

최근 3년간 도내 하루 1건 이상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는 안전한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가 제공한 지난 2016년 제주도의 지역성평등지수를 살펴보면 교육·문화·복지·보건·경제활동분야에서 전국 상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의사결정 부문에서는 분발이 요구된다. 제주 여성은 아직도 정치참여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제주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국최고다. 

여성은 더할나위 없다.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상황에서 집안의 대소사일까지 여성이 도맡아야 하는 현실은 부모세대를 이어 대물림되고 있다. 더욱이 '제주여성은 강인하다'는 왜곡된 관념은 여성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열악한 환경을 의지로써 극복해야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를 강요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제주 여성은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 4·3사건은 여성으로 하여금 홀로 자식을 돌보고 키워야 하며 남성의 빈공간을 채우도록 강요했다. 4·3사건이 여성에게 가한 성적 학대는 공적 역사에서 공식적으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쑥대밭이 된 재건의 현장에 누구보다 발벗고 나선 이들도 여성이다.

지난 19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주간정책회의에서 원희룡지사는 "여성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다"고 역설했다고 전해진다. 말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되는 정책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론으로서가 아닌 생활체감적 성평등이 실현되기를 원한다. 

다가오는 지방선거,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권리를 되찾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역사적 날이 되리라 믿는다. 여성이 안전한 사회, 성평등이 실현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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