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문학평론가·수필가·논설위원

미투(#Me Too)와 위드유(#With You)운동은 현직 검사의 성(性)추문 행보로부터 '괴물'이라는 한 시인의 작품이 도화선이 돼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그동안 가해자들은 본색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음지에서 계속 유지된 까닭은 무엇일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첫째, 그 동안 우리 사회 각계 인사들의 성 문제에 대한 인식이다. 배꼽 아래의 사건은 관대하게 넘기려는 사회적 인식이 머릿속에 녹아들어 있다. 성에 관한 내용은 '내가 아닌 너'일 때 안주 삼아 은근한 이야기로 흥을 돋우고 이를 부추기는 문화가 내재했다. 옛 선조부터 술이라는 매개물을 이용해 그 동안 음습한 관행을 즐겨왔다. 이랬으니 다수가 모인 공개적인 장소에서 문단의 한 원로가 "바지를 벗고 자신의 것을 주물러라!"고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함께 있었던 다른 이들 모두는 제어 안 하고 방관했다. 

둘째, 이러한 사건이 터진 곳에는 같은 조직의 수장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구조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그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쉽게 고발하지 못한다. 

셋째, 우리의 냄비근성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내 조용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험한 세상을 하느님의 세상으로 바꾸겠다는 천주교의 한 수장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사흘 정도만 보도거리가 없으면 잠잠해진다'는 문자를 보냈다. 더 놀라운 것은 해당 가해자는 각종 큰 이슈 때마다 정의와 양심을 내세우며 각종 시위에 참가한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라고 하니 진짜 밥맛 떨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예술감독은 연극연출가답게 리허설까지 준비해 기자회견에서 "극단 내에서 18년간 관습적으로 일어난 형태의 일이다"고 자신의 성적 쾌락을 변명했다. 또 있다. 집권 여당 차기 대통령 후보 현직 도지사가 성적 쾌락을 위해 자신의 여비서를 성폭행하고 이슈가 되자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그런가 하면 서울시장 출마선언 직전,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연기한 이도 있고 한 연예인 대학교수는 자살까지 했다.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들 가해자는 대중을 의식해야 하는 직업이다. 문제는 현행법상 성범죄의 판단 기준으로 피해자 사실입증이 쉽지 않다. 도리어 피해자를 교묘히 꽃뱀으로 만들어 법망을 피해 간다. 이러다 보니 가해자 대부분은 다른 누군가의 권력 뒤에 숨어 침묵하며 시간을 번다. 그리곤 또 다른 명목으로 합리화하고, 보복 및 협박과 편가르기를 한다. 사회적 카오스모스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소유한 자들이 만들어낸 침묵의 카르텔은 무지하고 비겁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무슨 기득권이냐, 당사자는 침묵하는데 왜 네가 꼬드겨 문제를 키우는가, 이게 나 혼자만 한 짓이냐, 상대방도 은근히 원해서 내가 먼저 시도한 짓 아니냐, 돈이면 다 해결된다'는 등으로 항변한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다.

1955년 12월 초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의 일이다. 로사 팍스(Rosa Parks)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에 올라탔다. 빈자리에 앉았던 로사팍스는 백인 승객과 운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인권과 권익을 위해 거부하다 체포됐다. 이 당시 모든 공공건물에는 흑인은 다른 출입구를 이용해야 하는 시대였다. 이를 계기로 마틴루터 킹 목사가 중심이 돼 일 년 넘게 진행된 승차거부운동으로 결국 버스에서의 흑백차별은 영원히 폐지됐다.

"여성들이여. 용기를 내어 싸워라~! 이제 괴물, 페미니즘은 사라져야 한다". 이것이 #미투·#위드유의 본질이고 보편적 인권문제이다. 이 운동이 활성화되고 용기있는 외침이 헛되이 되지 않게 정부에서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만 인권과 권익이 바로 서고 성적 도덕성이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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