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흔히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한다. 근 반세기 동안이나 우리에게 그토록 잔학했던 일본과는 50여년 전 관계를 개선했고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분단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992년에는 그들과도 역사적인 수교를 맺었다. 이 같은 사실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것처럼 지금의 친구도 영원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게 국제정치의 냉엄한 속성이다. 

이 같은 국제정치의 냉혹성은 모든 국가는 철저하게 국가이익을 절대시하는 데에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에선 동맹이 더 나쁘다"라고 한 것만 보더라도 국제관계에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는 국가이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이념과 가치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는 동맹국의 맹주로서 25%의 수입 철강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면제 대상국에서 한국이 빠진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고 있는 나라와의 관계에서 국가이익의 절대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사드문제로 촉발된 중국의 전 방위적 보복을 보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작금의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라고 하는데도 이런데, 항차 그간 계속된 군사적 도발에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서울 불바다' 운운한 북한이 과연 그들 이익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와 대화하고 협상하려고 할까. 분명한 사실은 그들의 이익은 우리의 손해이고 우리의 이익은 그들의 손해인데도 말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특사의 평양방문으로 남·북정상회담은 4월에, 북·미정상회담은 5월로 잡히면서 대화와 협상이 장안의 화두가 되고 있다. 물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소기의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넘어야할 산과 건너야할 강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야할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벽하게 대응함으로써 추호의 실수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떠오르는 것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사자성어다. 

유비무한의 사전적 의미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거리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서경' 열명편에 출처를 두고 있는데 거기에 '모든 일마다 그 준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惟事事 乃其有備 有備無患)'라고 적혀 있다.

'상서(尙書)'라고도 하는 '서경'은 먼 옛날 전설시대로부터 유사시대에 걸친 기록을 담고 있는 고전 중 고전으로서 고전이야말로 번뜩이는 생각, 위대한 영혼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 모든 사안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역사상 준비가 없었거나 무시했을 때 우리는 원나라로부터 70년의 수모를 받아야 했고 왜의 약탈과 호의 난폭도 어쩔 수 없이 당해야만 했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 지배를 받았는가하면 기습 남침으로 막심한 재산과 생명을 잃기도 했다. 

이처럼 준비 여하에 따라 고락과 존망은 갈리고 진퇴와 성쇠가 바뀌는 것이 역사의 공리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상기 두 정상회담을 앞에 두고 만일의 경우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사전에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경계해야 할 점은 개인적인 아집과 편견 그리고 진영의 논리나 이념적 편향을 버리고 중지를 모으고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융합시키는 일이야말로 철저한 준비의 기반이 되고 절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이야말로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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