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전 동국대교수 겸 학장·논설위원

'미투(me too)라는 외래어'가 최근에 유행하고 있다. 본래 '흉내를 낸다'는 뜻으로 사용해왔지만 '나도 입장이 같아서 공감'한다는 의미로, 변질돼왔다. 우리고유의 '유유상종(類類相從)'의 글귀와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공감대를 형성'해온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근본취지와는 다르게, 직위와 성별대립을 앞세우는 추세를 낳고 있음으로 '국민통합과는 역행'하고 있다.  

근본으로 소급할 때 '잘못된 접대문화'에 기인하고 있다. 기생(妓生)을 매개로 삼고 술자리를 마련하며 '남성위주의 전통문화'에, 젖어온 것이 관행으로 돼왔다. 낯설고 신분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서먹해짐으로 이를 완화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래서 노래와 춤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한편, 중계역할을 위해 화류(花柳)문화를 동원해왔다.
시대상이 바뀌면서 이를 퇴폐문화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기득권을 누려온 일부집단의 경우, 안일과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갑을(甲乙)관계로 표현'하는 잘못된 행동방식에 젖어온데 따른 것이다. 이것이 '약자의 편에 선 대중들'에게 분노로 이어지게 만들었고 직권을 남용해온데서 사회문제로 확산됐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시대라고 한들 '조직에 근거한 권력평등'은 존재하지 않는 점이다. 

그래서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간에, 직권(職權)을 통한 강압과 굴종관계를 맺게함으로써 불만과 대립을 심화시켜왔다. 

이럴 때일수록 필수적인 것이 '올바른 길을 위한 정도(正道)'이고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해야한다. 하지만 '득세계층이 누리는 저급한 행태'는 반대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적폐(積弊)의 온상'임으로, 청산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이 마땅하게 됐다. 

실제상황은 이를 청산하기보다 '부도덕한 집단과의 야합(野合)'을 통해 세상을 오히려 혼탁하게 해왔다. 이것이 '국민기대치에 멀어지게 만든 요인'이었다. 

역사속의 화담(花潭)서경덕을 떠올리게 만든다. 박연폭포-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칭송'할 만큼, 개성인물로서 '존경을 받아온 위치'에 있었다. 벼슬보다 태연자약(泰然自若)한 자세를 보이며 올바른 지도자위상을 확립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배우기 위해서, 또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민중을 선도하는 학문과 '옳고 그름에 대한 심판'이 별개가 아니며, 민심이 반영된 흡인력(pull force)을 발휘해온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들판에 나갔지만 나물을 캐지 않고 '종달새의 날개 짓에 미료'돼 이를 관찰하며 몰입해온데 따른 효험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가벼운 것이 올라가는 원리'였고 이기(理氣)설에 대한 도통(道通)으로 이어졌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귀(富貴)는 다투어야하니 끼어들기 어렵고 산수는 금하는 이 없음에 몸 두기가 편하다는 글귀를 남겼다. 벼슬보다 '자연이치를 따르는 도사(道士)'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대명기(名妓)인 황진이가 공부를 명분삼아, 한밤중에 의도적으로 접근해왔건만 잠자는 시늉으로 무반응의 모습을 보였다.

세상을 '홍진(紅塵)으로 표현'하며, 탐욕을 초월해온 이런 고귀한 정신세계야말로 오늘의 시대상에 '사범(mentor)'으로 남고 있다. 평생을 통한 노력과 수행을 감내하지 않고 '국민이 선망하는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리를 확보했더라도 '직책에 알맞은 품격'인지, 진정한 자성과 더불어 '혁신적 자세를 보일 때'임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물질보다 정신을 높게 평가하며 '새 시대를 여는 전환점'으로 삼으며 '지혜의 원천'으로 활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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