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게스트하우스 투숙 20대 여성 살인사건
동부서 사건 정황 포착…용의자 신병확보 시도
지방청 '명백한 증거 없다' 이유 긴급체포 거부

제주경찰이 '긴급체포' 요건에 발목 잡히면서 살인사건을 미궁에 빠트린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관할 경찰서는 유력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지방청은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긴급체포를 거부, 결국 사건은 용의자의 자살로 종결됐다.

20일 제주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달 10일 오전 10시45분께 제주에 관광 온 A씨(26·여)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동부서는 이날 오후 2시20분께 A씨가 투숙했던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해 관리자인 한정민(32)을 만나 면담했으며, 이날 오후 4시50분에는 게스트하우스로부터 약 500m 거리에서 A씨의 차량을 발견했다.

특히 동부서는 이날 오후 7시14분께 한씨가 준강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으며, 13분 뒤 한씨가 사건 발생 추정일인 8일 오전 6시2분께 타인의 차량을 이용해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확보했다.

A씨가 실종이 아닌 강력사건에 연루됐을 정황들이 포착된 것으로, 동부서는 한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긴급체포하려 했다.

그러나 제주지방경찰청은 '성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용의자를 긴급체포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제시, 결국 동부서는 한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방청 관계자는 "긴급체포는 혐의를 뒷받침하는 명백한 증거가 있어야 가능하다. 당시에는 살인이 아닌 단순 실종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라며 "긴급체포 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할 경우 경찰은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관할 경찰서와 지방청이 긴급체포를 두고 이견을 보인 시점은 10일 오후 9시10~40분이다. 또 한씨가 타 지역으로 도주하기 위해 항공편에 오른 시점은 이날 오후 8시35분이다.

긴급체포키로 한 후 한씨가 항공편을 통해 도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더라면 한씨는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될 수도 있었다.

결국 사건은 한씨가 14일 천안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사건 경위와 과정, 범행 동기 등은 끝내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지방청 관계자는 "당시 한씨가 운전했던 타인의 차량이 A씨의 차량으로 확인되지 않았고, 실종자가 살해됐을 것이라는 정황도 나오지 않았다"라며 "사정이 이렇다보니 혐의를 특정할 수 없어 긴급체포 자체가 불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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