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걸스로봇 대표·논설위원

여자들이 일한다.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아직 모르는 남자들이 많은 것 같아 큰 소리로 외친다. 여자들도 일한다. 섹스하고, 아이 낳고, 살림하는 일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일들도 한다. 자연이 설계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성기와 자궁과 가슴의 일을 별다른 대가도 받지 않고 치러내면서 자신이 원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또 다른 일들을 죽도록 한다. 배 부른 짓 한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간다. 그러다 정말로 죽기도 한다.

필자의 친구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였다. 중국어에 일어도 할 줄 알았다. 그런 인재도 두 아이를 낳고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고, 우리 임 변호사, 애를 둘이나 낳을 줄 알았으면 뽑지 말 걸 그랬어. 허허허" 농담이랍시고 그 말을 한 이는 평소에는 대단히 선량하고 점잖은 남자 파트너였다. 한창 때는 민주화 운동을 했던 투사였다고 한다. 유능한 친구는 두 아이 엄마를 받아준 조직과 동료들의 '관용'에 보답하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다 급성 백혈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둘째 돌도 보기 전이었다. 그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어제까지 존재하던 사람이 물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충격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됐다. 친구는 자꾸만 꿈에 나왔다. 쫓아와 붙잡기도 했다. 나는 울면서 빌었다. "미안해. 나 아이가 둘이야. 같이 갈 수 없어" 친구도 울면서 말했다. "나도 아이가 둘인데…" 그제서야 그게 얼마나 무섭고 슬픈 일인지 깨달았다. 새끼들을 지키지 못하고 떠난 에미가 남기려던 메시지는 뭐였을까. 

필자 역시 두 아이를 키우던 워킹맘이었다. 어제의 에이스는 둘째를 임신한 순간 조직의 잉여가 됐다. 필자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살았다. 더 나아가려 했던 친구는 멈춰졌다.

서귀포 성당에서 백일 동안 친구의 미사를 올리고 신부님께 부탁해 친구의 사진과 선물들을 태웠다. 그리고 '걸스로봇'을 시작했다. 적어도 대한민국 인문계에서 최고의 알파걸들이었던 우리는 실패했다. 게을러서도 무능해서도 아니었다. 다음 세대 여자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공계로 가라. 지금 가장 여성과 젠더에 관한 지표가 낙후된 그곳에서 오히려 살 길을 찾아라. 대체할 수 없는 기술을 쥐고, 데이터로 설득하라. 들어가라, 버텨라, 살아남아라. 분노로 시작했던 일은, 여대생들을 만나 서로 자라는 기쁨이 됐다. 이제 기쁨이 분노보다 크다.

지난 주말, 스타트업계 여성들이 모인 '스타트업 위켄드 위민(Startup Weekend Women)'이라는 해커톤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여자가 96%나 됐다. 그 잘난 여자들 앞에서 어쩌다 걸스로봇 같은 일을 시작했는지, 어떻게 3년 동안 살아남았는지 이야기하다, 친구의 죽음 대목에서 울고 말았다. "결혼 10년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한 참석자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다가와 말해주었다. "엄마는 영양사였는데, 저희 남매를 낳고 일을 포기했어요. 저도 두려워요" 또 다른 참석자가 명함을 받아가며 말했다.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어려운 일을 해줘서 고마워요. 돕고 싶어요" 

이 땅에서는 결혼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겠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건 여자들이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여성을 착취하기 때문이다. 개체의 생존을 위한 여성들의 선택이 한국인이라는 집단의 영속을 위협하고 있다. 이래도 페미니즘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자를 일하게 하는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죽지 않고 일하며 살 수 있다는 걸, 조직이,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또 다른 미투(#MeToo)다. 참고로, 필자는 두 아들의 엄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