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훈식 제주어보전육성위원·논설위원

부동산에서 좋은 땅이 나왔다. 얼른 사야 한다. 돈을 챙기면 끝까지 보관하는 아내에게 땅을 사야 한다고 다그쳤다. 느닷없이 웬 땅이냐 부터 육하원칙 질문은 당연하고 사서 집은 어떻게 지을 것이냐고 취조가 쏟아진다. 이걸 언제 다 이야기하고,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는지 남편은 난감하다. 

부부로 만날 때, 궁합을 본다. 궁합은 좋고 나쁨이 없다. 원만한 상황이 아니고선 남녀의 합궁은 잘 되게 돼 있다. 다만 성격차이가 부부관계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갑자기 땅을 사겠다는 남편에 대해 졸속 행정이나 탁상공론으로 치부하고 성실한 아내는 이번에도 부정적이 사례로 미리 분위기를 조성해 돈을 벌려는 흑심을 패망 수순으로 간주하고 저지하고 만다. 그러다 보니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만 굴뚝이지 연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 썰렁한 찬밥신세다.

이 부부의 관계는 남편은 유목민의 성격이고, 아내는 농경민의 성격이다. 부동산에 나온 땅은 좋으면 좋을수록 선점한 구매자의 몫이 된다. 이럴 때 그 땅은 사냥감이다. 그래서 남자는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둘렀던 거다. 기어이 땅을 못 사게 됐으니 아쉬움을 술로 달랜다. 술이라도 마셔서 일찍 죽기라도 하면 속이라서 덜 상할 터인데 중병에 시달리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므로 남편이 병든 이유도 어떤 스트레스가 원인인지 꼼꼼한 판단이 요구된다.

이런 부부는 쇼핑을 같이 가면 더 스트레스를 받을 확률이 높다. 남편은 구두도 물오리 한 쌍으로 착각하고는 얼른 사기 바라건만 농경민 아내는 실용적으로 오래 신어야 하고, 메이커도 있어야 남이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으므로 한 두어 시간 정도는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린다. 이 때 유목민 남편은 쓸데없는 시간을 소모한다고 속이 끓는다. 농경민의 입장에서 보면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것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순발력이 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더 곤욕을 치르게 하는 경우가 있다. 

혼자 육지 여행 갔다가 사온 물건을 바꿔오라고 할 때가 지독히 난감하다. 왜냐하면 산 물건을 사냥한 짐승으로 생각하는 유전자(DNA) 때문이다. 포획하고 집까지 가져온 것을 어떻게 제자리로 되돌릴 수가 있느냐는 거다. 

농경민 아내는 온순한 편이고 성실해서 알뜰하고 살뜰하다. 장롱을 사도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항아리도 수 십 개를 장만해서 해마다 직접 장을 담는 것은 기본이고, 김치도 철따라 다양하게 담근다. 비교적 요리솜씨도 좋고, 방청소도 잘한다. 유감이지만 역마살이 끼었다고 착각하는 유목민 남편은 그런 장점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게 문제다. 

목초지 따라 이동하는 들소를 쫒아 사냥을 해야 하므로 집도 천막이 제격이고 항아리 김치 대신 훈제고기가 편한 식단이다. 떠돌아다녀야 하므로 남의 눈을 의식한 복장보다는 그 곳의 상황에 맞는 옷이 제격이므로 싸야만 여러 벌을 준비했다가 버릴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유목민 남편은 농경민 아내를 무시하게 돼 무례하기가 짝이 없다. 아내가 현관바닥까지 물걸레 청소를 했음에도 흙 묻은 신발을 신은 채 침대 옆까지 걸어와서 걸터앉는 유목민 남편과 궁합을 맞추면서 40년이 넘게 살았다면 이건 기적에 가깝다. 성격이 닮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여기에 덧붙이면 안 되는 사족이지만 우연히 만난 여자들은 유목민 남자가 땅을 사라고 하면 최소한도 본전은 될 거라는 순발력으로 동조를 해 준다. 물론 여자 돈이니까 여자 이름으로 산다. 또한 그만큼 수익을 챙김도 당연하고 당당하다. 제안을 한 유목민 남자는 창을 갈아야 할 신돌 값으로 약간의 커미션을 받고 헤어지는 수순을 밟게 되는 거다. 

그래도 농경민 아내는 새봄을 기다리듯 기다려주면서 이만큼이나 사는 건 좋은 아내 만난 덕분이라고 달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난이 지겨운 남편은 대를 이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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