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장·논설위원

집단의 기억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고 알리는 일은 전 세계적인 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4·3 70주년을 맞이하는 제주사회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기억하지 못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호소의 움직임들이 문화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각계각층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특강과 교육활동들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4·3인식을 심어주는 훌륭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집단의 기억은 4·3을 직접 경험한 세대의 기억과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세대들의 기억으로 구성되며 그것이 지향하는 역사적 인식은 화해와 상생 그리고 평화라는 사회적 목표의식에 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가. 집단의 기억 중에서 경험세대들의 증언을 통한 기억의 물결은 꾸준히 이어져 왔으나 후 세대들의 기억에 대한 노력들은 초보적 단계 머물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집단의 기억은 시간과 공간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제주 4·3은 특히 공간을 통해 기억 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의 4·3은 용암동굴, 오름, 곶자왈, 사구 등의 자연적 공간과 마을, 학교와 같은 사회적 공간에서 기억의 샘이 마르지 않고 솟아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용암동굴은 모든 세대에게 가장 생생한 기억을 전달해 주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동굴이라는 폐쇄된 장소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은 기억세포를 자극하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주의 자연동굴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화산지형이다. 그러나 화산활동의 특성으로 인해 동굴의 규모나 형태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특히 동굴의 내부형태는 거미줄 같은 미로를 보이기도 하고 다층구조를 이루기도 하며 이어지다가 막히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고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이 무수히 많이 형성되고 있어서 동굴전문가의 탐사도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곳이다 이러한 공간적 특성에 따른 연유로 제주에 4·3의 광풍이 몰아칠 때 많은 지역주민들이 동굴을 피신처로 삼았으나 피난처 보다는 집단의 학살 터로 변해버린 게 현실이고 보면 어쩌면 가장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공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또 다른 생각이 무수히 들기도 한다. 그러나 동굴의 기억은 4·3 집단의 기억으로 승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본다.

동굴입구에서 연기를 피워 동굴 속에 피신했던 사람들이 질식해 운명을 달리했던 다랑쉬굴의 기억은 제주 4·3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만들었고 이곳의 기억들이 제주도 전체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선흘곶자왈에 위치한 목시물굴과도틀굴의 기억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동광리 큰넓궤의 집단기억들이 지역주민들의 가슴을 뚫고 나와 지슬이라는 영화의 촬영장소로 이용됐으며 영화를 통한 4·3의 기억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문학과 예술을 통해 오랫동안 4·3의 해결을 위해 기여해 온 것처럼 현장에서의 교육과 체험을 통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현장을 통한 역사적 체험은 파급력과 기억력이 상승하게 되고 참여의식과 공동의식이 동시에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또한 4·3은 제주도민 전체의 아픔을 간직하는 역사이기에 편향되지 않고 올바르게 전달하는 자세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들판에는 그들의 기억을 부르는 곳이 많이 있다고 본다. 제주 4·3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물론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여정은 참으로 어렵고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제주의 힘을 대한민국의 힘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개인의 기억들이 집단의 기억으로 승화시켜 역사의 중심으로 서게 한다면 어쩌면 제주 4·3 경험세대들의 생존기간에 그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기억의 힘을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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