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실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문학평론가·수필가·논설위원

집 가까운 둘레길을 찾았다. 얼마를 걷자 꽤 넓은 억새풀밭이 나타났다. 억새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물결로 흔들리며 아우성친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과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날고 세갈랫길까지 있어, 이곳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릴 때 동네의 길흉사가 있을 때 까마귀떼가 어디서 알고 날아왔는지, 전봇대 위나 지붕에 앉아 까악까악 대었다. 어른이 돼서도 까마귀하면 백로가(白鷺歌)가 머릿속에 남아 흉조로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까마귀를 다들 길조라고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 준다. 생각도 못 한 대답이다. 고정된 인식이라는 게 얼마나 미련스러운 것인가. 

연암(燕巖) 박지원은 까마귀라 해서 검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햇살에 반사되는 유금빛, 녹색빛, 자줏빛, 비취빛을 갖고 있다고 했다. 연암이 강조한 것은 고정된 선입견을 지양하고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보라는 것이지만, 까마귀의 검은 깃털에 반사되는 여러 빛깔의 조화는 놀랍기만 하다. 

작년 1월 초, 나는 세쿼이아국립공원의 산속에서 심한 심장압박을 느껴 엘에이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석 달의 간격을 두고 두 차례 심장동맥에 스탠트 3개를 넣고 독일 함부르크 부근 대학 선배집을 3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리곤 선배집을 중심으로 구(舊)동유럽을 한 달간 기차와 버스로 여행하고는 꼭 찾고 싶었던 곳, 암스테르담 도시 한복판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뮤지움에 들렀다. 본관 입구에서 한참이나 줄 서서 입장권을 구하고는 꽉 찬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전시관에 들어갔다. 멀티미디어 가이드를 빌려 귀에 꽂고 작품 옆에 붙어있는 번호를 눌러가며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드디어 3층에 있는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앞에 섰다. 

19세기 사회학자들은 현대사회를 일러 '위기의 시대' '단절의 시대'라 했다. 고흐도 무언가 잃어가는 시대, 극한 상황의 절규, 빈곤에의 상실감,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고뇌하며 자아를 찾아 헤맨다. 누가 사주도 않는 그림 그리기와 유일한 후원자이자 응원자인 동생 테오에게 일상을 편지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어느덧 나이 37세, 프랑스 오베르 쉬르우아즈에서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화폭에 담는다. 익은 밀밭 위로 나는 까마귀를 보며 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길, 지친 길을 까마귀와 함께 하늘 높이 멀리 날고 싶어진다. 그림을 다 그린 후 들판에 나간다. 운명의 여신 아트로포스(Atropos)에게 기도하며 자신의 가슴에 총구를 대고 생을 마감한다. 지독한 허무감과 혐오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살이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낫다'는 속담이 있는데 말이다. 이리하여 많은 관람객은 고흐의 삶과 주검을 「까마귀가 나는 밀밭」 화폭에서 통찰하려는 듯 쉬이 발길을 옮기지 못하고 서성이는 듯했다. 

누구나 인생은 산보자이기에 얼마를 걷다가 반드시 멈추게 된다. 하이데거도 삶에 걸맞은 공통된 '합당한 죽음'은 산보를 마치고 귀가하는 장소라 했다. 고흐의 그림을 목격한 나는, 상황에 따라 종속되는 정신세계를 뒤집어 보는 역주사고(力走思考)의 변주곡으로 전환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순(耳順) 중반을 넘긴 나는 미국과 한국에서 생활하며 병원에 들락거린다. 그 탓에 나를, 죽음 앞에 세워보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멈춘 오후는 온통 잿빛으로 낮게 가라앉아 있다. 무료함을 덜기 위해 한적한 곳을 산책하다 돌음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다. 외딴 식당 옆 이파리 하나 없는 거무칙칙한 큰 무환자나무 가지마다 누런 금빛 열매가 치렁치렁 달려 있고, 그 가지 위로 까마귀떼가 앉아 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떼까마귀는 염라국 저승사자요, 금빛 열매는 북망산천에 사용할 여비 같다. 

집을 향해 걷는데 비가 을씨년스럽게 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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