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화가·논설위원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 그림책을 펴낸 권윤덕 작가가 4·3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구상한다며 여러 차례 제주를 방문해서 취재도 하고 답사도 다녔다. 2년여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파고든 결과 '나무도장'의 더미북이 만들어졌고 제주의 그림책 관계자들과 모니터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작가는 더미북을 보고난 후의 반응을 자못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열댓명 모인 자리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는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던 이들도 그날은 말을 아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섣불리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만 4·3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가 3년 전쯤이었다. 제주인들에게는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을 시간이 지났어도 세대가 바뀌고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어도 4·3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힘들다. 

4·3에 대해 듣거나 작품을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일인데 자료를 수집하고 고민하고 상상해 새롭게 형상화하는 작가들은 오죽할까. 이 힘든 작업을 강요배 작가는 1989년부터 3년 동안 경기도의 한적한 농가에서 두문불출하며 몰입한 결과 50여점의 연작으로 4·3을 오롯이 드러냈다. 이 작품들은 1992년 제주, 대구, 서울에서 '동백꽃 지다'라는 제목으로 전시돼 전국에 있는 일반대중들에게 4·3을 알리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탐라미술인협의회가 '4·3미술제'를 시작해 올해 25회째를 맞았다. 탐라미술인협의회의 '4·3미술제'가 2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않고 이어져 온 힘은 고 김현돈 미술평론가의 표현대로 '샤먼'처럼 희생자들의 넋을 위무해 주고 기억투쟁의 의지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작가들이 작품으로 4·3을 알리며 평화와 상생을 이야기했다면 작가가 아니어도 말로 꺼내는 것조차 저어했던 이들도 조그만 이미지 하나로 4·3의 기억투쟁에 동참하는 방법이 생겼다. 동백꽃 배지를 다는 것이다. 예전 동백꽃이 늦겨울에서 초봄, 동네 올레 여기저기서 보이는 예쁜 꽃이었다면 강요배 작가가 '동백꽃 지다'를 발표한 이후 동백꽃은 4·3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올해는 4·3 7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가자는 취지의 동백꽃 배지달기 캠페인이 진행됐는데 유명인들도 배지달기에 동참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4·3의 전국화에 한걸음 다가섰다. 4·3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더라도, 역사적 사명감이 투철하지 않더라도, 동백꽃을 다는 일은 보통의 사람들이 4·3에 대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버이날이면 달게 되는 카네이션은 100여년전 미국의 버지니아에서 어머니를 여읜 딸이 어머니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달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어버이날이면 카네이션을 찾아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듯 4·3에는 너나없이 동백꽃을 달아보면 어떨까. 만들어진 동백꽃 배지 다는 것을 넘어서 미술활동으로 직접 꽃을 만들기도 하고 선물 주기도 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백꽃이 퍼져나간다면 더욱 더 좋지 않을까? 4·3이 아직 이름도 제대로 지어지지 못했고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일들도 많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4·3동백이 널리 퍼져나아갈 때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고자 하는 기억투쟁은 파급력을 더할 것이며 4·3이 제대로 정립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동안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금기의 단어 '4·3'이 동백을 매개로 제주로 부터 온세상에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가 지속적으로 멀리멀리 퍼져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카네이션이 어머니를 추모하는 데서 시작돼 이제는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꽃이 되었듯 동백이 4·3의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시작됐지만 훗날 평화와 상생, 그리고 사랑으로 아우르는 꽃이 될 수 있기를, 그러므로서 제주가 진정 사랑과 평화의 섬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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