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시선 01 강덕환 시인 「생말타기」
1992년 지역출판문화운동 일환 발간
비극을 앞둔 평화로움 둔한 동통으로

"…말아, 짜부가 되지 말고 버티어라/준마가 아니고서는/건널 수 없는 식민지의 강/아 아 드디어 시작종이 울리는구나/우리들의 현실은 슬픈 분단조국/그래도 가야지 쉬엄쉬엄…"('생말타기'중)

강덕환 시인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2001년 쓴 '만벵디'를 통해서다. 1994년부터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4·3피해신고실에 일했던 시인은 예비검속이란 이름의 시보다 더 극적이고 아픈 증언을 품었다.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뼈가 녹고 가슴이 문드러지는 아픔을 속울음마냥 힘겹게 쏟아냈다.

"그대, 기억하는가 섯알오름/듣도 보도 못한 골짜기/모진 광풍에 스러지던/ 칠석날 새벽//부모형제 임종 지키지 못한 불효/천년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다는데/뼈마디 하나 겨우 추스른/주름진 세월'('만벵디' 중)

그의 첫 시집 '생말타기'(1992)의 4·3은 아프다는 외침이 둔한 동통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4·3이 발발하기 전 너무나 평화로웠던, 찾아올 비극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시절의 기록이다.

지역출판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발간된 시집은 절판됐지만 리본 시선을 통해 다시 태어난 것들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4·3'이란 단어를 온전히 끌어내지 못했던 상황을 헤집기 위해 꿈틀댄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으로 체화된 특유의 리듬감이나 '엄혹한 시절의 기록'이 웡이자랑 같은 익숙한 흥얼거림을 빚어낸다. 한그루, 128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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