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1조원 시대…장애인 복지의 그늘] ③여성장애인의 현주소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중복 피해 노출
배우자·부모에게 폭행 당해도 다시 가정으로
독립적인 삶 영위위한 기본법·조례제정 시급

내년 제주도 사회복지 예산은 1조70억원으로 사상 처음 '복지 예산 1조원 시대'를 열었다. 행정의 복지 정책은 강화되고 있지만 정작 도내 장애인들은 여전히 열악한 삶의 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제주 장애인 복지의 그늘을 세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살기 위해 집에서 도망쳐 나와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성폭행과 강제 성매매였습니다"

제주지역 여성장애인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요구되고 있다.

폭행 가해자와 격리되지 못하고 있는데다 성폭력·성매매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이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는 허술하기 때문이다.

19일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접수된 폭력 피해 여성장애인은 2015년 58명, 2016년 47명, 지난해 51명 등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중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가정폭력+가정 내 성폭력' '성폭력+성매매' 등 두 가지 이상의 중복 피해를 당한 여성장애인은 2015년 8명, 2016년 10명, 지난해 5명 등으로 전체의 14.7%에 이른다.

가정폭력의 가해자는 대부분 배우자 및 부모이며, 성폭력과 성매매의 경우 주변 지인들이 대다수다.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와도 결국 주변 지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성범죄 피해로 이어지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제주에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장애인을 위한 보호시설이 전무하다. 가정폭력을 당해도 결국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6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 주최의 토론회에서는 여성장애인 기본법 및 조례 제정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다양한 폭력과 차별을 당하고 있는 여성장애인들을 위해서는 피해 발생 후 지원보다 폭력 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기본권 보장 차원의 법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교육 기회·경제활동 진입 확대 등 여성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기본권 보장이 각종 폭력과 차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이를 위해서는 여성장애인 기본법 및 조례가 제정돼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관계자는 "가족폭력 피해 여성장애인들은 가정과 무조건 분리돼야 하지만 보호시설이 없다.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있는 것"이라며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낮은 경제력과 교육 수준으로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폭력으로부터의 예방을 위해서는 여성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기본권 보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끝>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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