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남 교육체육부 차장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한다.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찾아간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칼레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가 처형을 자청했거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이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해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

최근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과를 햇지만  국민적 공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업 총수 또는 일가가 갑질로 고개 숙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꽤나 익숙하다. '피해자의 갑질 사건 폭로→해당 기업과 총수를 향한 비난 여론→대국민 사과'는 이미 정형화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아론제임스 철학과 교수는 저서 「그들은 왜 뻔뻔한가」 에서 '슈퍼 갑을 '저절로 욕이 나오게 하는 골칫덩이'로 칭하며, 이들의 갑질은 마땅히 누릴 것을 누리고 있다는 '특권의식'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나는 특별하다'는 특권의식이 사회적 통념을 기반으로 한 도덕성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도덕 체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 '골칫덩이들의 특권의식은 평등한 존재로서 도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일반적 의식과 충돌하면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재벌 3세들이 반드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지만 그들이 그릇된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수천, 수만에 달하는 직원·가족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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