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충남대학교 교수·논설위원

물리적으로 고립된 섬의 생태계는 상대적으로 충격에 취약하다. 제주도의 십분의 일 크기에 신비로운 거대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이 극단적인 변화를 겪었는데 환경과 개발의 부조화가 중요한 한 원인이었다.  

호랑이 장죽 물던 시절 제주도는 왕성한 초목으로 덮인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거주민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나 면적에 비해 많지 않았기에 자연을 훼손해도 물 빠진 모래사장에 줄긋기여서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더 근래 필자의 유년시절 쯤에만 인구가 30만 명 정도였던 제주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서귀포 지역의 폭포 두 개는 그 때도 장관이어서 구경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폭포 상류 물줄기는 명승지에 물을 대는 역할보다는 공업용수로의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되었었다.

정방폭포 옆에는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전분공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천지연 폭포 상류에서는 포도당을 만드는 공장이 들어섰다. 이 공장들에서 배출되는 찌꺼기가 심각한 물 오염을 일으켰고, 세월이 지나며 공장들은 철거되었다. 경제적으로는 고구마 재배 농가보다 관광객들에 생계가 연관된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개발과 자연환경의 보존이라는 상반된 선택에 대한 인식이 막연하게나마 퍼지기 시작했다. 인구와 소득 증가, 기술 발달, 대외 개방 확대 등 큰 흐름이 점점 빨라지면서 제주지역에서 개발과 보존 이슈는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근본적 원인은 물리적으로 협소한 지역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잠재적인 방문객에 둘려 쌓여 있다는 것이다. 2년 전부터 중국인 방문객이 줄기 전까지 엄청난 수의 유커들이 몰려왔다. 국내에서는 물질적 풍요 일변도의 가치관이 바뀌며 정신적 여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제주도는 매우 매력적인 거주지 및 방문지가 되고 있다.

이스터섬의 몰락에 가까운 변화의 정확한 이유에 대해 논란이 있으나, 주어진 환경(작은 면적)에 비해 개발(만 명이 넘는 인구, 900개 가까운 거대 석상)이 지나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제주도에도 사람이 크게 늘면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사람들이 제주의 청정 환경과 낮은 인구밀도가 주는 한가로움을 높이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협소한 섬에 방문객이 예상치 못했던 속도로 늘며 수용능력이 거의 포화된 형국이다. 발생하는 생활하수, 쓰레기 처리에 애를 먹는 현재 상황이 이런 판단을 뒷받침 한다. 증가세가 지속되면 밀집도시 개발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오는 사람을 막을 방도는 없다. 나라 전체의 경제상황 관점에서 관광산업의 주요 거점으로써 제주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내국인 해외방문자가 외국인 방문자보다 많은 불균형이 지속되며 관광수지 적자가 계속 늘고 있고,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한계를 보이며 관광을 포함하는 서비스 산업의 확대가 우리 경제의 과제라고 한다. 이러니 국내 이주 및 방문객의 유입은 줄지 않을 것 같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깨끗한 행선지로서 중국 내 제주의 위상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한중관계의 개선으로 유커 유입도 재개될 전망이다. 이런 외부 여건을 감안하면 지난 수년간 우도가 겪었던 방문객과 차량의 홍수를 제주도 전역에서 재연될 개연성이 크다. 최근 중앙 언론에 가파도가 소개된 기사를 보며 반가운 느낌이 들기보다 그 좁은 지역이 자칫 방문객 밀물에 우도 2탄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누구에게도 정답이 없다. 하지만 도지사를 뽑을 때 개발과 보존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인지 확인해야 한다. 정답이 없어도 도정의 책임자는 문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일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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