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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3. 4월의 우물 밖 풍경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8-04-30 (월) 17:36:14 | 승인 2018-04-30 (월) 17:39:56 | 최종수정 2018-08-13 (월) 14:48:17
서귀포진성터.

서귀진성터에 부서지는 4월의 햇살은 동심의 목소리를 닮았다. 4·3, 4·16, 4·19..., 자유와 정의의 피로 물들인 역사를 뒤로 한 채 하늘을 배경으로 무지개색 무늬들이 휘날린다.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오후의 햇살 아래 오래 앉아 있어도 좋은 날씨다. 

진성의 입구를 가로막는 정낭이 내려지고, 소나무와 우물을 가로수 삼아 펼쳐진 의자들에는 전세계 예술그림책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눈에 익숙한 그림책들을 펼쳐본다.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 파리데 파잠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 권윤덕의 『꽃할머니』, 에즈라 잭 키츠의 『내 친구 루이』,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 이수지의 『파도야 놀자』, … 등. 누군가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드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그림책을 펼쳐보고 있다. 게일 실버 글, 크리스틴 크뢰머 그림의 『화가 났어요』다. '요즘 아이들, 화가 날만도 하지'라며 혼잣말을 해본다. 아무렴, 화가 날만도 하지.

어릴적 동네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4월이면 친구들과 동네 야산이나 오름으로 달래, 냉이, 두릅, 고시라를 캐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우물터에 달라붙어 우물 바닥을 오래 쳐다보았다. 우물 속에 비친 얼굴은 일그러지고 이마에는 길이 났으며, 눈알은 검었다. 옆집 사는 미선이는 코 속으로 동굴이 생겼다며 자꾸 내 소매를 잡곤 했다.

서귀포진성터.

그런데 내가 본 것은 코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실뱀이다. 까무라치게 놀라 자빠졌는데 친구들은 뭐가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그 일로 나는 동네 우물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 후로도 자주 동네 우물에 갔고, 영철이란 아이는 밤이 늦어도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우물안에서 그의 시체를 발견했다. 우물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렇듯 충격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나처럼 우물에 대한 기억이 부정적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우정과 사랑이 움트는 묘연의 장소가 아니었을는지 싶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1999)에서 주인공 쟈오 디(장쯔이 역)는 마을로 부임온 젊은 선생님 창위(쩡 하오 역)의 눈에 띄게 하려고 우물터에서 한참이나 서성거린다.

젊은 선생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창위가 지나다니는 길가를 서성이게 하고, 정성들여 도시락을 싸게 만든다. 물론 우물가에 나타난 것은 그녀가 기다리던 선생이 아니라 그녀를 좋아하는 동네 총각이었지만 말이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물 속에 비친 시인의 모습은 밉고, 가엾고, 그리웁기만 하다. 식민지 조국의 가난하고, 젊고, 여린 청년시인이 바라본 우물 속 자화상은 마냥 부끄럽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과 안타까움이 컸던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귀포진성터.

우물에는 정말 물이 있을까? 뒤꿈치를 들어 우물 바닥을 내려다본다. 물이 없다. 대신 풀한포기가 두터운 벽을 뚫고 고개를 들었다. 제주의 산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인데 이름을 모르겠다.풀에게 미안하다. 풀의 이름을 아는 것이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어느 야생화 전문가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풀 이름 외기'라는 송수권 시인의 시도 생각난다. 

봄날에 날풀들 돋아 오니 눈물 난다./쇠뜨기풀 진드기풀 말똥가리풀 여우각시풀들/이 나라에 참으로 풀들의 이름은 많다./쑥부쟁이 엉겅퀴 달개비 개망초 냉이 족두리꽃/물곶이 앉은뱅이 도둑놈각시풀들/조선 총독부 식물도감을 펼치니/구황식(救荒食)의 풀들만도 백오십여 가지다./쌀 일천만 섬을 긁어가도 끄떡없는 민족이라고/그것이 고려인의 기질이라고/나마무라 이시이가 서문에서 점잖게 게다짝을 끌고 나온다./나는 실제로 어렸을 때 보리 등겨에 토면(土麵) 국수를 말아 먹고/북어처럼 배를 내밀고 죽은 늙은이를/마을 앞 당각에 내다버린 것을 본 일이 있었다./햄이나 치이즈 버터나 인스턴트 식품이면/뭐나 줄줄이 외워 대는 어린놈에게/어서 방학이 왔으면 싶다. (송수권 시,「우리나라 풀이름 외기」중에서)

아이들이 시를 써서 우물 벽에, 나무 빨래줄에 걸어놓았다. '벌거숭이 감귤'이라는 제목의 시는 "감귤은 껍질 속에서 나가고 싶어 몸부림을 쳐요"라고 말한다. 옷이 훌러덩 벗겨지니 부끄러워져서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졌어요."라고도 쓰고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자유분방해서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마구마구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한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한 앨리스가 그렇고, 금지된 숲에 들어선 헤리포터가 그렇다. 사고에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이들은 거침없이 벽을 뚫고 새로운 길로 나선다. 경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건 무지이기도 하지만 편견이 없는 순수성이기도 하다.

동심이야말로 편견 없는 '순수 무(無) 그 자체'가 아닐까. 어른들은 아이들로부터 기꺼이 배움을 자청해야 한다. 우물 밖 풍경에서 배운 오늘의 문구다. 어린이가 스승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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