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논설위원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는 성 이시돌(St. isidore) 목장이 있다. 제주서부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목장은 금오름, 정물오름, 밝은오름으로 둘러싸인 해발 250~350m 일대의 초지에 입지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육소장(六所場)'이라는 국마장(國馬場)이 위치했다. 

최근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1928~2018, 한국명 임피제) 신부의 선종(善終)으로 그가 제주축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업적들이 부각되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의 수의사 가정에서 성장하다가 신부가 되어 1954년 제주에 입도해 천주교 복음전파와 함께 축산업 발전과 사회복지 확대에 기여했으며, 특히 1960년대초부터 성 이시돌 목장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축산기술을 보급한'제주 축산업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인물이었다. 

임피제 신부처럼 외국에서 들어 왔던 신부들은 제주역사에 굵직한 흔적들을 남겼다. 천주교가 제주에 전래되던 초기에는 1901년의'이재수의 난'[신축교란]에서처럼 외국인 신부들과 지역주민들 간에 갈등이 있었으나, 1939년에는 아일랜드 출신 다우손 패트릭 신부 등이 천주교 신도들과 함께 항일운동에 동참했다('제주천주교사건'). 

임피제 신부의 활동무대는 성 이시돌 목장과 부임 성당이 위치한 한림지역이었다. 그는 이 목장을 통해 개량종 돼지와 선진 축산기술을 제주사회에 보급하며'제주 축산업의 근대'를 선도했다. 1960년대초에는 매입한 땅을 목장으로 만들기 위해 4H 청년회원들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했으며, 목장 내에'테쉬폰(Cteshphon)'이라는 이국적 건축물을 제주에 최초로 도입해 축사와 숙소로 이용했다. 현재 테쉬폰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1962년에는 (재단법인)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를 설립해 성 이시돌 목장과 배합사료 공장, 한림수직사(대림리 1310-10)를 운영했으며, 축산개척농가 조성에도 앞장섰다. 목장과 사료공장 운영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성이시돌 의원과 성이시돌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 운영비로 지원하면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에 노력했다. 

임피제 신부가 성 이시돌 목장에서 시행했던 축산정책들은 제주의 축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실례로 1960~1970년대에는 지역주민들에게 단기간에 비육돈을 사육하는 기술을 전수했고, 1970년대에는 주민들과의 연대사업으로 대림리, 명월리 마을공동목장 등의 목축환경 개선을 위해 건설 장비를 지원했다. 무축(無畜) 농가를 대상으로 저렴하게 소를 분양하여 마을주민들에게'축산업의 허브'역할을 하며 신뢰를 쌓았다. 1980년대부터는 젖소를 기르면서 제주사회에 낙농업의 시작을 알렸으며, 수익을 내며 운영하던 치즈와 우유가공 공장을 1991년 제주낙농협회에 제공해'이웃과 함께하는 상생과 나눔경영'을 실천하는 본보기를 보였다. 2003년부터는 경주마를 도입해 마필육성과 종마 사업도 병행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친환경적 목장경영을 위해 유기축산물 인증을 받았고, 친환경 분뇨처리 시스템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성이시돌 목장이 실현하고 있는 축산정책과 축산철학들은 마을공목목장이 급속히 붕괴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주지역 축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부단한 품종개발과 축산기술 개발 그리고 무엇보다 축산하려는 의지가 중요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1960~80년대 제주축산의 근대를 선도했던 맥그린치 신부는 선종했으나 그의 철학을 계승할 제2, 제3의 맥그린치가 육성되어야 제주축산업의 미래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축산업허가제로 인해 영세축산농가들이 축산을 포기하는 현실에서 제주의 축산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축산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제2의 맥그린치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할 구체적인 정책들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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