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인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분권실장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이 17만건을 넘어섰다. 지난 8월 개설된 이래 매달 2만건이 넘는 청원 요청이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는 주민이 정책 제안에서 실행까지의 과정에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 서울'이라는 주민참여형 플랫폼을 시범 운영 중이다. 경기도도 도민제안 통합 창구를 구축하고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갈수록 확대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소통에 대한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참여 플랫폼을 구축하는데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제안된 정책들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법규인 조례를 제·개정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조례 없이 정책이 현실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조례 제·개정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 발안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아이들의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 스스로가 학교급식 지원에 대한 조례를 만들어 청구하는 주민조례 운동이 확산됐다. 

그 결과 2003년부터 2005년까지 98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 급식에 대한 조례가 주민 청구로 만들어졌고 조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학교 급식에 대해 책임을 부여하여 급식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2009년에는 서울 광장에 대한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는 조례에 9만명의 시민이 서명해 시민의 뜻을 관철시켰고 2015년 시흥시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의 참여를 보장하고 청년의 권익 증진을 보장하는 조례를 전국 최초로 주민조례로 제정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먹는 안전한 급식, 시민들이 즐기는 광장에서의 다양한 문화 활동은 결국 주민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창의적인 조례 청구의 결과인 것이다. 

이처럼 주민에 의한 조례의 제안은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원들에게 지역에 대한 책임성을 부여하여  주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게 된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난 1월부터 주민참여조례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 조례안에 대한 전자서명을 가능하도록 해 온라인을 통해 주민이 청구한 조례에 쉽게 서명할 수 있다. 모바일 기반으로도 확대해 주민조례에 대한 서명이 더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전망이다. 또 현재 지역별로 19세 이상 인구수의 1~5%인 서명 요건을 향후에는 인구 규모별로 세분화함과 동시에 대폭 완화해 주민 조례 청구가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주민 발안, 주민 투표, 주민 소환 등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는 이미 도입되어 있으나 그동안 쉽게 이용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촛불 시민 혁명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의 과정과 결과를 경험한 국민들은 앞으로 정치 참여에 대한 욕구도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서명과 청구요건의 완화는 주민 발의 조례가 활성화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산 풋귤은 완숙된 귤보다 유기산 등의 함량이 높아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불과 3년전만 해도 풋귤은 상품가치 있는 완숙된 감귤을 수확하기 위해 버려지던 애물단지였다. 제주도는 풋귤이 안전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제주도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풋귤 출하 농가에 농약검사비용을 지원해 잔류농약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대량 유통을 가능하게 했다. 조례의 개정이 없었더라면, 내 앞에 놓여있는 향기로운 풋귤차를 맛볼 수 있었을까. 이처럼 지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조례인 것이다. 여기에 주민의 참여가 더해진다면, 주민 발안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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