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평가가 극과 극의 위치에 놓여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여몽연합군에 저항했던 삼별초와 김통정에 대한 동시대의 평가는 이중적일 수뿐이 없다.

고려조정과 원나라의 시각에서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반란군이자 그 수괴다. 반면에 삼별초와 김통정의 편에서 바라보면 침략자 몽골과 그 세력에 편승한 고려조정에 대한 항쟁이다.

역사속의 삼별초와 김통정은 새로운 세계질서 재편의 와중에 휘말린 시대의 속죄양이었다. 이른바 몽골초원의 쿠빌라이가 유라시아 대륙을 제압해 가는 과정에서다. 세계가 그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동북아의 고려는 그같은 대세를 거부했다.

호국충절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삼별초가 그 중심에 있었기에 당연한 처신이었다. 물리적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조류였음에도 그들은 외세에 맞섰다. 그리고 그들은 반도의 남쪽 탐라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 했다.

시대조류를 거스른 탓에 그들은 오랜 세월 음지에 놓여졌다. 하지만 시대를 달리하면서 그들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져 있다. 오늘의 역사는 삼별초와 김통정의 저항을 단순한 ‘난리’로 보지 않는다. 외세에 대항한 ‘항쟁’으로, 호국의 화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변방인 제주 또한 역사속의 중심무대로 등장시키고 있다.

저항의 주체는 다소 다르지만 제주를 무대로 했던 유사한 역사적 사건이 금세기에도 없지 않았다. 현대사 최대 비극이라고 하는 ‘4·3’소용돌이가 그것이다.
‘폭동’‘폭도’란 일방적 매도속에 역사의 뒤안길에 놓여 있던 제주의 ‘4·3’.

시대를 달리하면서 제주의 4.3은 외세에 대한,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발족되면서 제주의 4.3을 민주화 운동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4.3특별법이 제정, 4·3진상규명과 함께 도민 명예회복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시대착오적인 이중잣대는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자는 4·3희생자가 될 수 없다’는, 4·3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의 희생자 선정기준이 그것이다.

냉전시대의 유물인 색깔과 역할에 따라 4·3의 희생자 여부를 가리겠다니, 그야말로 역사의 순리를 외면한 주제넘은 판단이 아닌가.
<고홍철·논설위원겸 코리아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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