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논설위원

필자는 독신문광(讀新聞狂)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약 한 시간 동안 지방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꽤 꼼꼼히 읽는다. 고향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일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지, 어떤 문화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등 알 수 있어서다. 또 식사를 하면서 중앙지를 펼쳐들어 1면부터 읽기 시작한다.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읽는 것에 대해 가끔 아내가 불평하지만 음식은 천천히 씹어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에 빵 두 쪽, 과일 몇 가지, 계란 하나, 요구르트로 해결하는 아침 식사 시간이 걸핏하면 40분이 넘는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신문을 읽는다. 요즘 중앙지가 매우 두터워져 다 읽을 수 없어 출근하면서 가지고 가 아침 일과가 대충 끝나고 나면 맨 뒷면부터 차분히 읽어나간다. 예전에는 사설이 대개 2면에 실렸는데 언젠가부터 맨 뒤에 실리므로 처음부터 읽다가는 맨 뒷면을 못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글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듣게 하는 도구다. 물론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 더 빠르게 새로운 소식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있으나 이러한 것들은 속도가 가지는 한계 때문에 잘못되기도 쉽고 단편적일 때가 많다. 또 뉴스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방송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역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 소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지나면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생겨 기존의 방송이 가졌던 한계의 많은 부분들을 보완해 곧 종이신문을 사라질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기도 하고, 사실 신문 발행부수가 많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종이신문은 여전히 살아남아 나와 같은 독신문광들을 즐겁게 한다. 사실 컴맹이다 보니 인터넷으로 뉴스를 찾아본다는 것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직업이 영상의학과 의사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상해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특히 핸드폰으로 보는 화면은 글자가 작을 뿐만 아니라 밝은 데서는 읽기가 어려워 더 꺼려진다. 그런데 신문은 들고 다니다가 시간이 나면 언제 어디서고 읽을 수 있어 정말 좋다. 가끔은 이발을 하러 갔다가 먼저 온 손님이 있어 가다려야 할 때 읽을 만한 신문이 있으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과부 설움은 과부만이 안다'라는 말도 있듯 우리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 이상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인생을 올바로 살려면 폭넓은 경험이 요구된다. 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시간적, 공간적 제한을 받게 돼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즈음처럼 청소년기에 대학 입시와 취업 공부하느라 지식의 축적에만 관심을 쏟는 경우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런 부족함을 우리는 독서나 영화 감상 등 간접 경험을 통해 보충한다. 가장 좋기는 여러 방면으로 고전을 읽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로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럴 때에 신문은 새로운 소식을 폭넓게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박식한 필진들의 견해를 알게 해줘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아울러 다양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담긴 독자들의 투고는 다른 각도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60년 넘게 읽은 신문이 채워주었다는 점에서 고맙게 여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독자들이나 시민들이 사물을 올바로 판단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신문이 정치적 진영논리나 사상적 가치 판단으로 편향적 보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나름대로 선택해야 하지만 적어도 정론을 추구하는 언론이라면 끊임없이 불편부당(不偏不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렵고 힘없는 쪽을 헤아릴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편을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때로는 힘없는 편을 드는 것이 국민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정의롭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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