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자욱한 주말 아침에 고사리를 꺾으러 다녀왔다. 서울에서 여행 온 지인의 간곡한 부탁에 우쭐거리며 따라 나선 것이다. 고사리 꺾는 대회에 참가한다면 내 손놀림도 순위권 안에 들 것이라며 거들먹거리면서. 그런데 벌써, 5월이다. 이제는 막물고사리일텐데 고사리들이 보일려나 사뭇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제주의 4월은 오름 전역에서 고사리 꺾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고사리 여행단'이라는 게 생겨난 모양이다. 이맘때 제주사람이라면 고사리 꺽는 일이 예삿일이다. 제사나 명절음식에 고사리를빼놓을 수 없으니 말이다. 제사를 지내지 않더라도 별미반찬으로 고사리는 손색이 없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고사리 반찬을 먹어버릇 해서 이맘 때면 찾는다. 아이가 "고사리 나물 먹고 싶다."고 할 때 솔직히 '늙신네' 같다 놀리면서도 한편 흐뭇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 먹던 음식은 성인이 돼서도 가끔 생각이 난다. 쑥버무리, 호박범벅, 수제비, 콩잎에 멸젖, 마늘 장아찌, 감자빼떼기 등. 음식은 그 자체로도 오감각적이어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흘러들어가기에 충분한 매개물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홍차에 빠진 마들렌 과자를 통해서 과거를 여행하듯이 말이다. 

열두어살인가 열서너살인가. 그때는 고사리 꺾는 철이 좋았다. 오랜만에 용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돈이란 게 없던 시절이라 제 손으로 용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남자애들은 지네를 잡아 동네가게에 가서 팔아 용돈을 벌었다. 여자애들은 고사리를 꺾어 용돈을 벌었다. 그시절  진풍경 중 하나는 고사리 현장 수매광경이다. 오름 한가운데 트럭 한대가 있었다. 아침에 지고 나간 고사리 망태기가 다 차면 오름 중간에 세워 둔 트럭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근을 달았다. 고사리 한근에 200원~300원 정도 했다. 망태기 하나가 꽉 차면 10근에서 12근 정도. 이른 아침에 나와 한나절 부지런히 손을 놀리면 2000원~3000원은 거뜬히 벌어서 내려갔다. 그 돈은 아껴서 쓰면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용돈은 됐다. 버스 회수권이 80원 하던 시절이라 그돈이면 라면땅을 실컷 사먹을 수도 있고, 꺼벙이가 나오는 '보물섬' 잡지도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고사리 꺾는 일이 노동이라 여겨지지 않고 일종의 놀이처럼 즐거웠다. 

하지만 돈 욕심에 고사리를 마구 꺾어서는 안된다. 많이 꺾을 요량으로 무덤 위에 핀 고사리를 꺾다가도 "무덤 위 고사리는 꺾어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이 자꾸 생각나서 버리기도  했다. 혹시나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남이 먹을 고사린데 뭘' 할만도 한데 어린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혼령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자연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위엄스러운혼령을 부른다는 것을 그때는 믿었다. 그런 믿음이 절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고사리를 꺾고 와서 가마솥에 살고 좋은 볕에 하루 정도 말리면 마른 고사리가 된다. 마른 고사리는 신문에 싸서 잘 보관해두면 다음 해까지 쓸 수 있다. 잘만하면 한 해 정도 고사리 꺾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한 해 조금 고생하면 해를 걸러도 되니 어르신들은 아픈 다리를 이끌며 "게나저나 오몽을" 한다. 꺾어온 고사리짐을 부려놓고 한 숨 고르는 어른의 숨소리에선 고단한 평화가 느껴진다. 해야할 일을 다 해놔야만 한시름 놓는 우리 어머니 세대의 윤리. 제사음식만큼은 제 손으로 장만해야 마음이 "노릇하다"는 어머니의 말이 어려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사 음식 할 때 기웃거리면 저리가라고 손을 내젖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조상 핑계를 대지만 자식들 위하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내가 오몽해야 자식들이 편안하겠지' 하는 마음. 어머니는 귀찮을 정도로 "오몽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했다. 움직여야 산다고. 정성이 반이라고. 

사월 긴 볕살 아래/삶은 고사리 마르고 있다/세상 몰라 새끼 지렁이/죽어/그렇게/마르고 있다/까맣게 난민촌 변두리/애기 탯줄이/마르고/있다(고정국 시 '고사리 말리기')

고사리 마르는 풍경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시인의 사유가 깊고도 슬프다. 먹는 얘기, 용돈벌이 얘기 하다가 이 시를 읽으니 섬뜩하다. 고사리 마르는 것을 가만 지켜보면 정말 마른 지렁이같다. 시인처럼 어린 생명의 탯줄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 난민촌 변두리에 사는 아이들은 마른 고사리처럼 뼈만 남은 채 눈이 퀭하다. 눈에 붙은 눈꼽을 먹겠다고 파리떼가 달려든다. 마른 지렁이 위에 파리가 달라붙은 형국을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하루 한끼도 채 먹지 못하는 아이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세계 최대 난민촌 지대인 방글라데시 남부 콕스바자르 등지에 본격적인 우기를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인종청소'를 피해 국경을 넘은 로힝야족 난민이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90만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들 피난처는 어찌해야하는 것인지. 

한 사람의 목숨이 물에 떠내려가는 마른 고사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잔인한 일이다. 평화를 위해 '인공청소'가 더 필요하다는 것은 어느 제국주의의 논리인가. 청소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고한 생명들을 바빡바짝 마르게 하는 힘의 논리다. 이념, 종교, 인종, 자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힘의 논리야말로 말끔히 사라져여 할 것들이 아닌지. 마른 고사리를 보며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의 5월을 생각한다. 내일 모레가 5월 광주민주항쟁 기념일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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