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 봉성교회 목사·논설위원

스승의 날이다. 왜 하필 5월 15일인가.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스승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탄생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한다. 지금 우리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대왕은 르네쌍스맨이다.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많은 분야를 섭렵했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전문분야의 어느 토론주제에서도 당당하게 맞서곤 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지만 쉬지 않고 배우면서 경청하였기에 가능한 경지였다. 

업적으로야 누구든 당연히 한글을 창제한 것을 떠올린다. 인류 문화사에서 보기 드문 자랑스러운 장면이다. 합리성으로 따져보아도 매우 과학적으로 체계를 갖추었으며 언어의 분야에서 예술성을 논하더라도 한글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한글을 가장 멋있게 활용한 시인으로 정지용을 꼽아본다. 학창시절 교과서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고, 참고서에서는 정○용으로 표기되던 문인이었다.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졸여야 했다. 반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시인에 심취했고 평생 그의 작품을 연구했기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시 어느 한 부분도 소개할 수 없는 시대였다.   

민족사의 비극, 전쟁의 참화가 시인도 비껴가지 않았다. 게다가 납북인지 월북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대에는 전쟁을 거친 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모두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의 마지막 행적을 확실하게 규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가을에 피난민 대열 속에서 희생됐다고 추정된다. 

청록파와 모더니즘 그리고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그가 발견한 시인들을 세어보면 그의 안목은 너무나 정확했다. 몇 편 되지 않는 시를 통해서 평가하는 그의 추천사를 읽으면 그 섬세한 관찰 능력에 놀라게 된다. 마치 일생의 모든 작품을 연구한 평자들의 글을 다 섭렵하고 이를 알뜰하게 표현하여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향인 충청북도 옥천은 그의 일생과 작품을 자랑스럽게 나열한다. 해마다 그를 되살리는 축제를 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 시인의 순수한 마음과 섬세하며 절제된 표현,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는 서정을 글로써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고마워한다.   

1941년에 펴낸 시집의 표제는 '백록담'으로 '한라산 소묘'라는 부제를 달았다. 여럿이 어울려 한라산을 등반했고, 그 감흥을 시로 담아냈다. 글자의 수를 세어보면 짧은 글이지만, 길게 쓴 기행문보다 더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아홉 편으로 구성된 연작시라느니, 아홉 연으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라는 분석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인의 표현을 그대로 읽고 느끼는 게 중요한 일이다. 

어려웠던 시국에 시인 일행은 8월을 택하여 산에 올랐다. 지금 등산객들이 활용하는 편의시설이나 장비, 교통수단의 도움도 없던 시절이니, 모든 움직임이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등산의 기쁨은 정상 정복의 순간에 한정되지 않는다. 시인은 한라산 등반의 모든 과정을 압축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대부분 제주인에게 한라산 등반은 일상이 아니다. 평생 한 번도 오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잠깐 제주를 방문하는 지인들이 한라산에 올랐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부러워질 때도 있다.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지만 어쩌면 우리들에게는 거룩한 산으로 남아 있다. 그 생명력 넘치는 산을 시인은 경험하고, 모든 동식물이 인간과 어우러져 있는 삶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시인의 이력을 보면 태어난 날은 확실하여 1902년 5월 15일이다. 어쩌면 대왕의 생일과도 같을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종 임금의 탄신일은 양력으로 계산해 우리의 달력에 고정된 날이고 시인의 생일은 음력이라 하니 아직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뭔가 공통점이 있는 듯 느껴져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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