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림 호서대학교 교수·논설위원

지난달 4월 27일 세계인들의 시선은 판문점에 집중되고 있었다.남북 정상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고양시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 등록된 내외신 기자만 40여 국가, 3000명(외신 기자 1000여 명)이 넘었다는 사실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당일 필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간 갖은 폭언과 도전 그리고 패륜적인 행각을 마다하지 않은 김정은에 대한 관심은 그 누구보다도 컸다. 그런 관심과는 달리 봄에 맞춰 진정한 화해의 봄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예정 시간보다 3분이 늦은 9시 33분, 김정은은 건장한 경호원들의 V자 경호를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의 분산형 열린 경호와는 달리 그들의 방어형 밀착 경호를 보면서 폐쇄사회의 경직성과 배타성을 읽을 수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그가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는 순간 얼어붙은 한반도에는 봄이 오는 줄 알고 있지만,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통과 인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관한 말이 오갈 때, 나는 적어도 북ㆍ중관계의 복원 내지 밀착 그리고 한ㆍ미ㆍ일 공조와 대북 제재의 이완 등 두 가지 점이 무엇보다 염려된다고 한 TV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육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선제 발언과 제스처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북쪽 땅도 밟게 했다. 그리고 두 정상이 수행인원을 소개 이동하다 김 위원장이 다시 돌아가 리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되돌아가다 남북수행원들과 촬영하자고 하는 걸 보고는 그의 여유로움과 치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정상회담을 끝내고 돌아갈 때까지 보여준 일련의 언행에서 결코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unconventional)' 3대 세습으로 이어진 일인독재자들의 허장성세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김 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과거의 거칠고 잔혹하다는 악명은 간 데 없고, 일시에 노성(老成)한 젊은 '굿맨'이 되어버렸다. 지금 한반도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의 입만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 때, 김정은의 수행단에 북한군 수뇌부인 리명수 총참모장과 박영식 인민무력상 외에 김영철과 리선권 등을 포함시킨 것을 보고는 이게 그의 의도된 구성인가 싶어 섬뜩했다. 지난번 평창올림픽 때, 김영철과 리선권은 군복차림으로 서울과 평창을 휘젓고 다닌 군인이다. 그러니 수행단 9명 중, 네 명이 북한군수뇌부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일찍이 공자는 문(文)으로 만날 때는 무(武)가, 무로 만날 때는 문이 따라야 한다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말을 남겼다. 춘추전국 때, 강국인 제나라 경공과 약소국인 노나라 정공이 협곡이란 곳에서 정상회담을 했는데, 당시 정공을 모시고 있던 공자는 이번 회담에 반드시 무를 대동하셔야 한다고 진언했다. 정공은 진언에 따라 무사를 이끌고 회담장에 나갔다. 제나라는 무력을 가장한 민속음악과 저속한 몸짓과 기예로 노나라 정공을 유혹하고 모멸하려는 궁중음악을 무대에 올렸다. 이때 공자의 항의와 명령에 따라 대동한 군사들은 공연을 중지시키고 목까지 베었다. 이에 제 경공은 자신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대신들을 꾸짖고 예전에 노나라로부터 빼앗은 문양의 땅을 돌려주겠다면서 과거의 무례를 사죄했다는 고사를 지닌 게 '협곡지회(夾谷之會)'라는 정상회담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체의 회담과 협상은 명분과 실리를 쫒다보면 득실과 성패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만찬장에서 감읍하고 냉면을 먹으면서 엄지나 치켜세우는 흥분과 감상은 접어두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각과 태도로 득과 실을 살피고 성과 패를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한반도에 봄이 온다고 떠들어도 열매는커녕 꽃도 피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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