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삼 UNITAR 제주국제연수센터 소장

최근 중국 정부가 발표한 하이난 섬의 개혁·개방 계획은 그 양적·질적 측면에서 입이 딱 벌어진다. 이 계획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세계 최대·최고의 자유무역항 건설"이다. 시진핑 주석은 하이난을 일단 자유무역 실험구로 지정하여 개발해가면서 2035년까지 중국 특색의 자유무역항으로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만들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이 야심 찬 프로젝트의 추동력은 관광과 친환경산업에서부터 일어나겠지만, 무역과 금융투자에 관한 규제가 제거되고 상품, 사람,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져 경제순환이 촉진되면 하이난은 세계 일류의 자유경제지대로 거듭날 것이다. 개발의 범위는 의료관광,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분야로도 확대되고 있으며, 여기에 거대한 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의 첨단기술을 여러 산업에 접목해 하이난을 중국의 제4차 산업혁명의 기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자유무역항 건설이 완료되면 중국 최남단에서 남중국해에 연해 있는 하이난은 시진핑 주석이 꿈꾸는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이난이 갑자기 떠오르니 경쟁 관계에 있는 마카오가 경계하는 눈치란다. 그런데 사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오히려 우리 제주도이다. 제주도 입장에서 하이난 개발 계획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친다. 두 섬은 처한 환경도, 발전 방향도 비슷하다. 제주도도 관광이 경제 전반을 떠받치고 있으며, 친환경 프로그램, 국제자유도시화 사업, 외자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제주도는 몇 해 전부터 "2030 탄소 없는 섬"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는데, 하이난도 "2030년까지 탄소연료차 전면금지"를 선언했다. 게다가 그간 제주포럼이 국제 담론의 장으로 발전해 왔지만, 보아오 포럼을 앞세운 하이난의 명성도 만만치가 않다. 이래저래 두 섬이 다방면에서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는 형국이다.

제주도의 자유화 개발 사업은 오래전부터 실시되어 왔고 성과와 경험도 축적되어 있어 하이난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하이난의 면적은 제주도의 18배, 인구는 14배에 이른다. 중국 현대화의 주역 덩샤오핑조차 실패한 하이난 개발을 시진핑 주석이 다시 끄집어냈을 쯤엔 꼭 성공해 보이겠다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간 국내 도박을 금지해 온 중국 정부가 하이난에 경마와 스포츠 도박을 허용한 것은 그러한 의지의 투영이다. 최근 정치구조 개편으로 절대 권력을 거머쥔 시진핑 주석에게는 하이난 개발이 황제급의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시범사업일 것이다. 그런 만큼 중앙정부가 직접 관심을 갖고 밀어붙일 것이니, 지방정부가 개발을 주도하는 제주도의 사정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이난 개발이 인근 섬, 인근 국가, 나아가 동북아 전체에 경제적 재도약의 불씨를 댕길 수 있다. 하이난과 제주를 잇는 크루즈 노선을 통해 유럽이나 미국에서 하이난으로 몰려드는 관광객을 제주도로도 끌어오는 관광상품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도 두 섬이 협력하여 '윈윈'할 수 있다. 가령 전기차 산업에서 우수 기술인력의 교류 및 교차 채용을 통해 제주도와 하이난이 전기차의 메카가 되고 양국 자동차 산업을 견인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시장 규모의 기회요인과 비교우위라는 위기요인은 제주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하게 한다. 규모의 경쟁에선 하이난을 이길 수가 없다. 크기에 밀려 모든 것이 하이난으로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하이난이 비자 면제 대상국을 59개국으로 확대함에 따라 그간 제주도를 찾던 관광객이 어느 날 돌아설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 정치권은 이 문제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으니, 제주도 스스로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기술 및 정책 측면에서든, 인적 자원 관리에서든 심혈을 기울여 한발 앞서 있는 질적 우세를 유지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세계 1위를 넘보는 거대한 경제 주체를 상대로 제주도는 어떻게 맞붙어야 할까? 시진핑 주석이 하이난 자유무역항 구상을 발표하면서 '중국 특색'을 유난히 강조했다는데, 해법은 바로 이 말에 있다. 제주도가 수학여행지, 신혼여행지로서의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올레길'이라는 지극히 제주다운 자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 어필할 수 있는 제주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제고해야만 한다. 지속가능관광에는 자연과 더불어 문화가 한몫하니, 제주의 토속문화를 찾아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녀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토착 자원의 계승·발전이 필요하다. 그동안 아름다운 자연만이 주목을 받느라 그 이면에 가려져 온 '제주 특색'의 요소를 발굴해내고 재창조하는 것만이 우리의 경쟁 상대가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발전의 비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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