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은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논설위원

보통의 우리들에게 평소 좀처럼 만나기 힘든 높으신(?) 분들이 깍듯하게 '폴더인사'를 하고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것은 실로 몇 년에 한 번, 선거가 임박했을 때다. 다음 달 중순으로 다가온 제주도지사 선거에 유래 없이 많은 후보자가 출사표를 던지게 된 상황에서, 도내 언론기관들은 연일 사안별, 후보별 정책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투표에 임하는 도민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혹자(或者)는 선택지가 많아진 것을 만족스러워 하면서 후보간에 면밀하게 비교를 할 수도 있고, 혹자는 그래도 찍을 사람이 없다고 개탄을 할 수도 있고, 또 혹자는 이참에 한번 바꾸어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혹자는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의사의 표현이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선거에서는 다수의 후보가 출마할 때 꼭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지만, 다자 후보 구도에서는 다수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과 관련하여 선거철 자주 인용되는 이론은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정치가인 콩도르세(Condorcet)의 투표의 역설이다. 예를 들어 A후보가 B후보보다 지지받고, B후보가 C후보보다 지지를 받는다면, A후보가 C후보보다 지지를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들 3자가 출마한 선거에서는 C후보가 당선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1987년의 대선에서 이미 이런 실례를 경험한 바가 있다.

다수결만큼 합리적인 의사결정방법이 없다고 믿었었는데 상식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니 수용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케네스 애로우(Arrow)라는 학자는 다수결의 원리를 통해서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197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즉 단순 다수결 방식에서는 유권자의 선호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수학자 라플라스(Laplace)의 과반수 투표제나 보르다(Borda)가 제안한 보르다 투표같은 대안이 있으나 역시 현실적 도입은 쉽지 않고 여전히 결함이 존재한다.

최근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제나 연동형 비례대표제같은 대안적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논의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정당이 받은 표에 비례해서 의석을 나누면 사표가 줄어들고 공정성과 표의 등가성도 높아지며 소수정당의 의석이 확보되어 다양한 국민의 의견반영이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다수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정신이 잘 반영될 수 있는 대안을 찾자는 논의이다.

몇 차례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두 명의 예비후보가 두 자릿수 지지를 받고 있고(조사기관과 발표시기에 따라 후보간 순위변동은 있었다), 나머지 세 명의 예비후보는 한자리수 지지율을 보였다. 응답률이 저조함을 고려할 때 실제지지율과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여론조사의 예측률이 높다고 가정한다면 지난 선거결과와는 달리 후보 중 누구도 과반수가 넘는 도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으며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단순 다수결제도가 갖는 결함에 따라 모두가 원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투표장에 나가야 할 것이다. 한 사회의 집단지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참여민주주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며, 완벽할 수 없더라도 무언가 바꾸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위대하며 진보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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