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주 사단법인 제주올레 상임이사·논설위원

버스터미널은 여행자에게 그 지역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이 '1도 안 생길' 만큼 우중충하거나 칙칙한 터미널이 대부분이다. 제주도내 버스터미널도 예외가 아니다. 버스터미널을 자주 이용하는 올레꾼들은 '버스 터미널이 너무 을씨년스럽다. 제주올레가 나서서 버스터미널을 산뜻하게 바꿀 수 없느냐'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래서 몇 달 전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아 갔다.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의 주요 이용객이 올레꾼인데, 올레꾼들과 지역민에게 좀 더 친근한 터미널로 바꿀 방법이 없느냐'고 제안했다. 마침 서귀포 터미널 측에서도 '터미널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서귀포 관광에 기여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며 반색했다.  

10년 전 서귀포매일올레 시장 상가조합에서 찾아와 '올레꾼들이 시장을 더 많이 찾고, 시장에 와서 지갑을 활짝 열 수 있도록 제주올레가 도와 달라'고 요청했었다. 시장 상가조합과 제주올레는 올레꾼을 비롯한 여행객과 지역민들이 더 찾고 싶어 하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고, 이런저런 협업을 시도했다. '서귀포매일아케이드 상가'가 '서귀포매일올레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제주올레 6코스가 시장 안으로 이어졌다. 상가 조합은 올레꾼들이 오면 즉석에서 사먹기 좋은 제주 메뉴들을 늘렸고, 올레꾼들이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도 마련했다. 그 결과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성공한 재래시장으로 성장했다. 올레시장은 손님이 미어터질 정도로 붐비는 곳으로 바뀌어, 지난해 제주올레는 상가조합과 협의해 시장 안으로 들어가던 제주올레 6코스를 시장 밖으로 변경해야 할 정도다.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은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제주올레가 여행자와 지역민의 의견을 반영해 터미널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데 함께 해주기를 원했다. 제주올레는 올레꾼들과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 서귀포시외버스터미널과 논의했다. 터미널 측은 몇 달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터미널 공간을 지역민과 여행자를 위한 문화 예술 공간으로 바꾸었다. 제주올레는 서귀포 시내를 출발해 엉또폭포, 고근산을 둘러보는 서귀포의 중산간올레인 제주올레 7-1코스 시작점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넘어온 올레꾼의 편의를 높였다. 터미널 안에 제주올레 공식안내소(제주올레 7-1코스)도 조성할 계획을 갖고 현재 시험 운영하고 있다. 편리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터미널은 오래 머물고 싶은 곳으로 진화했다. 오가는 여행자와 지역민뿐 아니라 터미널이 일터인 버스 기사들까지 변화된 공간에 만족스러워 한다. 

제주올레는 터미널의 하드웨어 뿐 아니라 콘텐츠의 변화도 꾀하기 위해 서귀포시와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터미널 내부 공간을 활용해 전시, 공연, 플리마켓, 제주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 5월부터 11월까지 토요일마다 '서귀포 터미널 토!토!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근에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오는 5월 26일에는 오후 2시부터 안 쓰는 물품을 서로 사고파는 중고장터 '토!토!즐! 마켓'을 차린다. 제주올레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장터 신청을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보물이 될 수 있고, 물건이 재활용되는 만큼 제주도의 쓰레기는 줄어들 것이다. 

터미널 본래의 기능을 강화하고, 나아가 문화공간으로까지 변모하고 있는 서귀포터미널의 시도는 서귀포에 대한 여행자들의 첫인상을 확 달라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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