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지.

'애쓰지 마라(Don't Try)'.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가 남긴 묘비명이다. 사랑도 그렇다. 어떤 치장이나 가식 없이 단순하고 솔직한 감정이다. 굳이 성별을 따지고, 나이를 묻고, 이런저런 조건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이나 당장 죽을 것 같은 절망의 감정 없이도 가능하다. 제주에 살고 싶다는 것도, 제주에 살고 있는 이유도, 어쩌지 못할 이유들로 제주를 등 뒤에 두는 사연에도 다 '사랑'이 있다. 제주가 그렇게 만든다. 4월이란 아픈 관문을 넘어 가족·가정이란 이름으로 5월을 만나면 그 느낌이 더 커진다. 감정이란 것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혼자서도 움직인다. 그러니 피하려 애쓰지 마라. 그리 말 할 뿐이다.

△사랑이 숨쉬는 공간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좋지 않은 것을 좋게/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에 답함'에 소리를 얹는다. 낭송까지는 아니지만 입에서 꺼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달아오른다. 적당히 달뜬 손끝의 떨림이 싫지 않다. 무심결에 혀로 입술을 축이고 속없이 웃어도 좋다. 애써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감정이다. 그것에 '섬'이란 이름을 붙여본다.

'제주'라는 단어에는 태생적으로 '이별'이 내포돼 있다. 헤어짐의 아픔이 있다는 것은 살을 맞대고 마음을 부대끼는 느낌을 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척박했던 환경 속에 이런 것들은 '잉여의 감정'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과연 그런가. 사뭇 안타까운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감정을 소비하는데 있어 제주만큼 솔직한 공간은 없었다. 제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설문대 여신을 통해 그려낸 '어머니의 사랑'부터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걸 줄 아는 자청비의 용기가 있었다. 외세의 압력과 수탈 등 많은 고비를 딛고 섬에서 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늘 '사랑'이 있었다. 

△아픔도 뒤집으면
바다를 '어머니'라 칭하지만 섬까지 여성으로 품을 이유는 없다. '오돌또기'와 '떠나가는 배'. 제주를 대표하는 민요와 가곡은 '이별 노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감정의 주체는 남성이다. 제주음악의 선각자인 고(故) 김국배 선생(1912~1965년)이 채보·편곡하며 알려진 '오돌또기'의 화자는 목 놓아 '춘향'이란 이름을 부른다. '둥그데 당실'하는 후렴구를 반복하며 흥을 돋우지만 사실 헤어진 가족을 그리는, 가슴 아픈 이별의 사연이 깔려있다.

'떠나가는 배'는 부두의 이별을 그린 노래다. 가곡이지만 헤어짐이 만들어낸 감정의 진폭은 아픈 단어를 사정없이 연결한 대중가요를 능가한다. 배경은 '제주부두'다. 6·25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난리를 피해 제주에 왔던 남성과 제주 여인의 사랑이 모티브가 됐다. 여인의 아버지가 딸을 배에 태워 강제로 부산으로 보내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남성은 떠나가는 사랑에 통곡을 한 실화를 시와 곡으로 남겼다.

이들의 헤어짐은 사회적 통념상 허용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뒤집어보면 난리통에 딸을 멀리 보내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도 있고, 사랑을 고집할 수 없었던 사연이 꽤나 아프다.

사실 그 이전 조선 시대만 봐도 유배로 바다를 건넌 이들과 남겨진 여인들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대상도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섬은 평생 눈물을 아끼라고 배웠던 남성들이 통곡을 하고 애잔한 그리움을 쏟아 내게 한다.

△이대로 괜찮겠냐
이 모든 것을 엮어 요즘은 '제주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닿는다. 얼마 안 남은 지방선거 얘기가 아니라 '이대로 괜찮겠냐'는 물음이다.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지독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속도감이 적당한지, 적당히 먹고 살만은 한지, 그래도 가끔 주변을 돌아보기는 하는지 하는 여러 뉘앙스를 깔고 있다.

꼭 제주여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주라서 더 아픈 것들이 있어 그렇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라는 이름이 균형 감각을 잃으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사랑과 마찬가지다. 한 쪽으로 기울면 그게 무엇이든 무너진다. 넘쳐도, 그렇다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결론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아프면 어떤 것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러니 나아질 거라, 좋게 하겠다 애쓰지 말라는 충고가 귀에 막힌다.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게 중요하다. 모처럼 5월이니 '풀꽃'노릇을 해볼 일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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